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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온 시207

자반 고등어 자반 고등어 /유홍준 얼마나 뒤집혀졌는지 눈알이 빠져 달아나고 없다 뱃속에 한 움큼, 소금을 털어 넣고 썩어빠진 송판 위에 누워 있다 방구석에 시체를 자빠뜨려 놓고 죽은 지 오래된 생선 썩기 전에 팔러 나온 저 女子, 얼마나 뒤집혔는지 비늘, 다 벗겨지고 없다 (현대시 2001년 4월호) 2006. 4. 8.
요실금 요 실 금 -김선우 일찍이 오줌을 지리는 병을 얻은 엄마는 네 번째 나를 낳았을 때 또 여자아이라서 쏟아진 양수와 핏덩이 흥건한 이부자리를 걷어 내처 개울로 빨래 가셨다고 합니다 음력 정월 요실금을 앓는 여자의 아랫도리처럼 얼음 사이로 소리 죽여 흘렀을 개울물, 결빙의 기억이 저를 다 가두지.. 2006. 4. 4.
단강 가는 길 丹江 가는 길 /이상희 소도시 끄트머리에서 산마을까지 달리는 시골버스 굽이굽이 산길 날뛰다 말고 노파 하나 내려놓을 때 보았다 버스 문 열리자마자 바깥으로 내던지는 지팡이, 출구 난간을 붙드는 두 손, 기어서 내려가는 늙은 몸. 그리고 다시 부르릉대며 날뛰는 차창 너머 먼지구름 사이로 보았.. 2006. 3. 25.
늙은 거미 늙은 거미 /박제영 늙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 당신, 늙은 거문개똥거미가 마른 항문으로 거미줄을 뽑아내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당신, 늙은 암컷 거문개똥거미가 제 마지막 거미줄 위에 맺힌 이슬을 물 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당신, 죽은 할머니 가 그러셨지. 아가, 거미는 제 뱃속의 내.. 2006. 3. 15.
날마다 강에 나가 날마다 강에 나가 /박남준 흐르는 것은 눈물뿐인데 바람만 바람만 부는 날마다 강에 나가 저 강 건너 오실까 내가 병 깊어 누운 강가 눈발처럼 억새꽃들 서둘러 흩어지고 당신이 건너와야 비로소 풀려 흐를 사랑 물결로도 그 무엇으로도 들려 오지 않는데... 2006. 2. 28.
적막 적 막 /박남준 눈 덮인 숲에 있었다. 어쩔 수 없구나 겨울을 건너는 몸이 자주 주저앉는다. 대체로 눈에 쌓인 겨울 속에서는 땅을 치고도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묵묵히 견뎌내는 것 어쩌자고 나는 쪽문의 창을 다시 내달았을까 오늘도 안으로 밖으로 잠긴 마음이 작은 창에 머문다 딱새 한 마리가 긴 .. 2006. 2. 24.
별이 지는 날 별이 지는 날 /박남준 어디 마음 둘 곳 없습니다 그가 떠나서만이 아니고요 산다는 것이 서러웠습니다 빨래를 널듯 내 그리움 펼쳐 겨울 나뭇가지에 드리웠습니다 이제 해 지면 깃발처럼 나부끼던 안타까움도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을까요 어디 마음 둘 곳 없습니다 별이 뜨고 별 하나 지는 밤 언제인.. 2006. 2. 21.
겨울 풍경 겨울 풍경 /박남준 겨울 햇볕 좋은 날 놀러가고 사람들 찾아오고 겨우 해는 드는가 밀린 빨래를 한다 금세 날이 꾸무럭거린다 내미는 해 노루 꽁지 만하다 소한대한 추위 지나갔다지만 빨래 줄에 널기가 무섭게 버쩍 버썩 뼈를 곧추세운다 세상에 뼈 없는 것들이 어디 있으랴 얼었다 녹았다 겨울 빨래.. 2006. 2. 14.
헛것을 기다리며 헛것을 기다리며 /안도현 이제는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 그 무엇 무엇이 아니라 그 무엇 무엇도 아닌 헛것이라고, 써야겠다 고추잠자리 날아간 바지랑대 끝에 여전히 앉아 있던 고추잠자리와, 툇마루에서 하모니카를 불다가 여치가 된 외삼촌과, 문득 어둔 밤 저수지에 잉어 뛰던 소리와, 우주의 이.. 2006. 2. 10.
대숲에서 뉘우치다 대숲에서 뉘우치다 /복효근 바람 부는 대숲에 가서 대나무에 귀를 대보라 둘째딸 인혜는 그 소리를 대나무 속으로 흐르는 물소리라 했다 언젠가 청진기를 대고 들었더니 정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우긴다 나는 저 위 댓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나는 소리가 대나무 텅 빈 속을 울려 물소리처럼.. 2006. 2. 5.
차 한 잔 차 한 잔 - 1 /백창우 차 한 잔 하시겠소 그대 마음 맑은 이 세상을 살지만 늘 세상 밖에 서 있는 이 차 한 잔 하시겠소 그대 눈 붉은 이 꿈을 꾸지만 늘 꿈 밖에 서 있는 이 2006. 2. 4.
쓸쓸한 낙서 쓸쓸한 낙서 철거지역 담벽에 휘갈겨 쓴 붉은 스프레이 글씨, SEX 저것을 번역한다면 '사랑'이거나 '씹할' 정도가 아닐까 분노와 욕망이 함께 거주하는 저 덜렁 벽 하나 뿐인 집 버티고 선 포크레인 그리고 도심의 휘황한 불빛 앞에서 피 흘리듯 흘림체의 저 SEX는 누리고 있는 자가 더 누리기 위한 호사.. 2006. 2. 1.
흔들리며 사랑하며 흔들리며 사랑하며 /이정하 이젠 목마른 젊음을 안타까워하지 않기로 하자. 찾고 헤매고 또 헤매이고 언제나 빈손인 이 젊음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하자. 누구나 보균하고 있는 사랑이란 병은 밤에 더욱 심하다. 마땅한 치유법이 없는 그 병의 증세는 지독한 그리움이다. 기쁨보다는 슬픔 환.. 2006. 1. 19.
바둑 - 2 바둑 - 2 /백창우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렴 길이 없다고,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쩔쩔매는 그대 아무데나 딛는다고 길은 아니겠지만 길이 없기야 하겠는가 검은 것은 검은 것의 길이 있고 흰 것은 흰 것의 길이 있어 시냇물이 흐르듯 그저 몸을 맡기고 흐르기만 하면 되는데 가다간 멈추고 자꾸 두리번.. 2006. 1. 17.
겨울 편지 하나 겨울 편지 하나 /백창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하나 만나기 위해 나는 다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정호승 '슬픔으로 가는 길'에서 무얼 꿈꾸는지 이 겨울, 너는 무얼 꿈꾸는지 …………………………………. …………………………………. 눈은 내리고, 우리 살아가는 자리마다 오늘 .. 2006. 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