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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화가 꽃 핀 운림산방의 겨울 매번 운림산방을 찾아갈 때마다 시간에 쫓겨 제대로 감상을 하지 못해 그동안 참 부끄러웠다. 이번 방문에서는 소치 미산 남농으로 이어지는 작품을 천천히 감상하다 보니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차이가 이제 내 눈에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1대 소치의 작품은 담묵과 중간묵을 주로 사용한 듯하며 붓끝이 갈라지는 갈필의 기법이 약간 거친 듯하지만 그림 전체적으로는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늦게야 꽃을 피운 2대 미산의 작품들은 담묵과 농묵을 사용하여 원근감을 나타내면서 먹물을 충분히 적셔 풍부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3대의 작품 중 가장 정적인 느낌이 든다. 이곳 운림산방을 완성한 3대 남농은 농묵을 좀더 많이 사용한 듯하다. 다듬어지지 않은 것처럼 거칠면서도 야성적인 느낌이 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소나무.. 2023. 2. 5.
서산 간월암 간월암에서 달을 보고 차안에서 피안으로 순간이동을 했다는데 달 커녕 해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천수만에 뜬 배처럼 부유하던 간월도가 폐유조선을 이용한 정주영공법 물막이공사로 영원히 육지에 갇혀 노도 잃고 닻마저 필요없게 되었지만 간월도 끝자락 손바닥만한 땅뙈기에 겨우 궁뎅이 붙이고 앉은 간월암은 하루에 두번씩 달이 배달해 주는 짠물에서 어리굴젓 냄새를 맡으며 반 세기 조금 모자란 세월을 지내왔다 미니 연등에 담아 놓은 소망들은 누가 봐도 미니가 아님을 기둥에 지고 선 부처의 표정을 보면 안다 미세먼지에 날길 막힌 오리 부부만 휴일을 맞았다 2023. 1. 13.
여수 충민사를 찾아서 여수에 오다. 게장집에서 점심을 마치고 비오는 낭만포차 거리에서 하멜등대를 만나고 맑은 남해 바다 속을 들여다 보면서 해변공원길을 걷다가 충민사에 오르다. 이곳은 임진•정유왜란 때의 영웅이신 이순신, 이억기, 안홍국 세 분을 모신 사당이다. 유물관 앞에 전시된 총통들을 둘러 보고 낡은 갑주 앞에 서니 저 옷을 입고 싸웠을 선조들 생각에 가슴이 뭉클하다. 그리고 이름도 없이 죽어간 의병들과 희생된 민초들이 그려져 코끝이 찡해져 온다. 사당은 공사 중 백성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간 선조, 시민들이 피난을 가지 못하게 한강 다리를 폭파시키고 내뺀 이승만 같은 지도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사당 계단을 내려오다. 숙소 앞 서목섬에 흐린 저녁이 밀려 온다. 2022. 12. 15.
부안 청자박물관 부안 청자박물관은 2002년 변산 앞바다 비안도 인근 해저에서 청자가 발견되어 수중탐사를 통해 약 3000점을 인양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2004년에 건립계획이 세워져 2011년 4월에 개관을 하게 되었다. 이보다 앞서 일제시대인 1929년에 일본인 노모리켄이 부안 청자를 첫 발견하였는데 다른 문화 유적들과 마찬가지로 강점기 내내 많은 양의 청자 유물이 일본으로 유출되었다. 해방 뒤 1958년부터 이화여대학교에서 청자 파편들을 구입 소장하다가 1983년 본 대학박물관에서 이를 정리하여 공개하였으며 1990년대에는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서 진서리와 유천리 등 청자유적지에서 여러 차례 발굴조사를 실시하기도 하였다. 이곳 박물관에는 단순 비색청자를 비롯하여 상감 및 철화 무늬 청자 외에 다른 기법을 사용.. 2022. 12. 9.
동학혁명의 흔적이 남은 부안 백산성 부안군 백산면에 있는 백산성은 김제와 부안을 사이에 두고 흐르는 동진강을 내려다 보는 작은 산에 있는 성이다. 이 작은 산이 백제의 멸망과 근대사의 한 획을 그은 동학혁명의 중요 지역이 되었다는 게 참 신기하다. "앉으니 죽산이요 서니 백산이로세." 이말은 이 좁디 좁은 산에 죽창을 든 농민군들이 앉으면 손에 든 축창만 보여 죽산(竹山)이 되고 일어서면 그들의 흰 옷 때문에 온통 흰빛이 되어 백산(白山)이 되었다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백산성은 아주 낮은 산에 있고 성터의 모습도 잘 보이지 않지만 앞으로는 동진강을 건너 호남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고 뒤로는 부안 들판과 그 너머로 읍내의 모습까지 다 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곳이다. 아마 날씨가 좋은 날이면 서해바다까지 다 내다 보였으리라. 그래서 지리적으로.. 2022. 11. 29.
전주 한옥마을 경기전과 전동성당 지하경 조용미 우레를 먹고 번개가 내려온다 어둠 속을 번쩍이며 내려오는 구근의 흰 뿌리들 저 뿌리 움켜쥐면 이 어둠을 훌쩍 넘어설 수 있을 텐데 뻗어 내리는 흰 빛의 섬광을 가득 받아먹은 자들 모두 뿌리에 매달려 지하경을 튼튼하게 한다 저 뿌리 움켜쥐면 백만 볼트의 어둠을 제압할 수 있다 죽어가는 자에게 마지막으로 쓴다는 용천혈의 대침같은 섬광을 받아 보아라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문학과 지성 시인선 338 조용미 1962년 경북 고령출생 1990년 한길문학으로 등단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일만 마리 물고기가 산을 날아오르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전주 한옥마을은 봄가을과 겨울이 둘러보기에 딱 좋은 듯하다. 봄가을을 선선한 날씨에 둘러보기 좋고 겨울은 따스한 느낌이 있어 또 다른 맛이 있다 2022. 11. 24.
강천산의 가을 찰칵 오세영 긴 것이나 짧은 것이나 한 편의 영화는 필름의 마지막 신*에서 끝나버린다 그러나 사진은 한번 찍어 영원한 것 ​ 영원을 긴 시간에서 찾지 마라 내일 아침에 헤어질 운명의 남녀도 한 몸이 되어 뒹구는 오늘 밤의 그 순간만큼은 내 사랑 영원하다고 말하지 않더냐 ​ 무시무종(無始無終)이 어디 있으리 반짝 빛나는 풀랫쉬의 섬광 그 한 찰나가 바로 영원인 것을 ​ *Scene ​​​―계간 《다시올문학》 2022년 가을호 무시무종 찰나가 영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영원하기 위해 오늘도 셔터를 누르나 보다. 2022. 11. 8.
이매창과 이중선의 묘를 가 보다 본명은 이향금(李香今), 자는 천향(天香), 매창(梅窓)은 호이다. 계유년에 태어났으므로 계생(癸生)이라 불렀다 하며, 계랑(癸娘 또는 桂娘)이라고도 하였다. 아버지는 아전 이탕종(李湯從)이다. 시문과 거문고에 뛰어나 당대의 문사인 유희경(劉希慶)·허균(許筠)·이귀(李貴) 등과 교유가 깊었다. 부안(扶安)의 기생으로 개성의 황진이(黃眞伊)와 더불어 조선 명기의 쌍벽을 이루었다. 부안에 있는 묘에 세운 비석은 1655년(효종 6) 부풍시사(扶風詩社)가 세운 것이다. 여기에는 1513년(중종 8)에 나서 1550년(명종 5)에 죽은 것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다. 그의 문집 『매창집』 발문에 기록된 생몰 연대가 정확하다. 그는 37세에 요절하였다. 유희경의 시에 계랑에게 주는 시가 10여 편 있다. 『가곡원류』.. 2022. 10. 9.
가을날/노천명 가을 날 노천명 겹옷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은 산산한 기운을 머금고 드높아진 하늘은 비로 쓴 듯이 깨끗한 맑고도 고요한 아침 ​ 예저기 흩어져 촉촉이 젖은 낙엽을 소리 없이 밟으며 허리띠 같은 길을 내놓고 풀밭에 들어 거닐어 보다 ​ 끊일락 다시 이어지는 벌레 소리 애연히 넘어가는 마디마디엔 제철의 아픔을 깃들였다 ​ 곱게 물든 단풍 한 잎 따 들고 이슬에 젖은 치맛자락 휩싸 쥐며 돌아서니 머언 데 기차 소리가 맑다 ―노천명 시집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시인생각, 2013) 2022. 10. 5.
영광 법성포 마라난타사 일반적으로 영광 법성포하면 굴비가 제일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그것말고 백제에 제일 먼저 불교가 전래된 곳이 이곳 법성포라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법성포(法聖浦)는 '성인이 불법을 전래한 포구'란 의미로 바로 간다라지방(지금의 파키스탄 북부) 출신의 승녀 마라난타가 비단길을 따라 중국을 거쳐 배를 타고 상륙했던 곳이다. 그때가 서기 384년 침류왕 재위 시절이며 이곳에서 멀지 않은 모악산 자락에 불갑사를 짓고 불법을 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영광군에서 1996년 경부터 성역화를 목적으로 간다라풍으로 사찰을 조성하고 유물관도 만들어 6세기 간다라 불상 부조 유물 등을 전시하고 있다. 2022. 9. 13.
장항 송림의 맥문동 장항 송림에 맥문동꽃이 한창이다. 이 송림은 장항공고가 여기에 있을 때 재학생들이 동원이 돼서 모래 벌판이었던 바로 이곳에 심은 것이라고 졸업생이었던 선배가 말해 주었다. 몇 년 전부터 심기 시작한 맥문동은 해마다 면적을 넓혀가며 이제 소문이 날 만큼 잘 가꾸어졌다. 솔잎이 떨어지면 인부들을 동원해서 일일이 걷어내고 수시로 물을 주는 모습을 수시로 보아 왔다. 보슬비가 내리는 월요일인데도 꽃을 보러온 방문객들이 제법 많아 이곳 맥문동이 유명세를 타긴 했나 보다. 2022. 8. 29.
함양 화림동 계곡의 정자들 2 함양 화림동 계곡의 정자들 2 동호정을 지나기 전에 서산서원에 들렀는데 장식용이란 느낌이 든다. 경모정과 남천정을 찾아가다 길이 험해 그만 두다. 농월정은 화림동 정자에서 백미라 할 수 있다. 앞쪽으로는 돌바닥 계곡이 좀더 널찍하고 험하게 흐르는 상하류쪽 물줄기를 잘 감상할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관광단지 쪽에서는 정자의 일부만 볼 수 있고 농월정교를 지나 산길을 100여 미터 걸어가야만 본 정자를 만날 수 있다. 정자 양쪽으로 배롱나무가 장식처럼 피어 있다. 2층으로 된 정자엔 안전요원들이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고 있었는데 곁에 앉아 선인들의 낭만에 젖어 보다. 10년 전만 해도 인파로 붐비던 관광단지는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폐허처럼 변해 버렸다. 서너 집만 문을 열고 있었는데 호객 소리는 사.. 2022. 8. 20.
함양 화림동 계곡의 정자들 1 함양 화림동 계곡의 정자들 1 이런 날이 여름 여행에는 제격이다. 기상도를 보니 기압골이 남덕유산을 비스듬히 가로질러 한반도 동서에 걸쳐 형성되어 있다. 약간의 비를 감수하고 시원함을 누리는 게 더 낫다는 나만의 계산법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노령과 차령의 경계쯤에서 오며가며 소낙비를 만났지만 정자골에서는 우산없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 2022. 8. 19.
비 내리는 옥구 향교 배롱나무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옥구향교는 군산시 옥구읍에 있다. 최치원을 모신 문창서원과 그리고 그가 글을 읽었다는 자천대, 옥산서원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데 언제 찾아가 보아도 점잖으신 어른처럼 듬직하게 맞아주는 곳이 바로 옥구향교이다. 1403년에 이곡리에 설립했다 1484년 이곳 상평리로 옮겼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 된 것을 1646년에 다시 지었다. 특히 대성전은 전면 3칸 측면 2칸의 전반적으로 균형이 잘 잡힌 건물이다. 홍살문 앞쪽에 오래된 비석들이 세워져 있는데 공적비들이 대부분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기 공적을 자랑하고 싶은 사람들은 줄지 않나 보다. 2022. 8. 17.
서천 봉서사 봉서사는 충남 서천 한산면에 있는 절로서 마곡사의 말사인데 이곳에는 국보인 목조 아미타삼존여래삼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극락전 앞에 있는 느티나무는 수령이 약 500년으로 추정하는데 2015년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데 찾아가는 날 조용히 비를 맞으며 고고한 자태를 보여 주고 있었다. 절의 규모는 아주 단촐하여 본당인 극락전과 삼성각 그리고 심검당과 종무소 이렇게 4채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이곳에 모셔진 삼존불은 17세기에 활동한 조각승 수연(守衍) 스님이 1619년(광해군 11)에 조성한 것이다. 수연 스님은 1615년(광해군 7)에 태전(太顚) 스님을 도와 김제 금산사 독성상을 제작하였고, 1622년(광해군 14)에는 현진(玄眞) 스님을 도와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상을 제작하였다. 비가 몹시 내려서.. 2022. 8.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