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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온 시

대숲에서 뉘우치다

by 여름B 2006. 2. 5.

 

 

    대숲에서 뉘우치다 /복효근 바람 부는 대숲에 가서 대나무에 귀를 대보라 둘째딸 인혜는 그 소리를 대나무 속으로 흐르는 물소리라 했다 언젠가 청진기를 대고 들었더니 정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우긴다 나는 저 위 댓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나는 소리가 대나무 텅 빈 속을 울려 물소리처럼 들리는 거라고 설명했다 그 뒤로 아이는 대나무에 귀를 대지 않는다 내가 대숲에 흐르는 수천 개의 작은 강물들을 아이에게서 빼앗아버렸다 저 지하 깊은 곳에서 하늘 푸른 곳으로 다시 아이의 작은 실핏줄에까지 이어져 흐르는 세상에 다시없는 가장 길고 맑은 실개천을 빼앗아버린 것이다 바람 부는 대숲에 가서 대나무에 귀를 대고 들어보라 그 푸른 물소리에 귀를 씻고 입을 헹구고 푸른 댓가지가 후려치는 회초리도 몇 대 아프게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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