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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온 시207

세상의 등뼈 / 정끝별 세상의 등뼈 /정끝별 누군가는 내게 품을 대 주고 누군가는 내게 돈을 대 주고 누군가는 내게 입술을 대 주고 누군가는 내게 어깨를 대 주고 대준다는 것, 그것은 무작정 내 전부를 들이밀며 무주공산 떨고있는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져 더 높은 곳으로 너를 올려 준다는 것 혈혈단신 땅에 묻힌 너의 뿌.. 2007. 11. 8.
가을 엽서 / 안도현 가을 엽서 /안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2007. 11. 04. 낮은 곳에서 누.. 2007. 11. 4.
시월/나희덕 시월 /나희덕 산에 와 생각합니다 바위가 山門을 여는 여기 언젠가 당신이 왔던 건 아닐까 하고, 머루 한 가지 꺾어 물 위로 무심히 흘려보내며 붉게 물드는 계곡을 바라보지 않을까 하고, 잎을 깨치고 내려오는 저 햇살 당신 어깨에도 내렸으리라고, 산기슭에 걸터앉아 피웠을 담배연기 저 떠도는 구.. 2007. 10. 20.
반성/진란 반성 -모든, 몸을 가진 것들을 위한 /진란 아직 나는 살아 있음으로 사그라지는 몸에 대하여 기울어지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잊고 있는 것에 대하여 잃어버린 회한에 대하여 몸을 가진 그것들에 대하여 기억이 남아 있는 동안에 내 발이 밟고 다닌 것들에 대하여 잘못을 빌어야 한다 가지 않아야 했을 .. 2007. 10. 9.
다시 채석강에서/진란 다시 채석강에서 /진란 그를 다시는 펼쳐보지 않으리라고 두텁게 쌓인 먼지를 털어내지 않았다 밀려왔다 푸르릉 피어나는 물거품도 서로 꼬리를 물고 사라지는 이무기의 꿈만 같아 수십리 밖으로 펼쳐진 모래톱에서는 해무가 시나브로 일어나나니 칠천만 년동안 아무도 펼치지 않았다는 이백의 서재.. 2007. 9. 29.
어떤 자리/정끝별 어떤 자리 /정끝별 어떤 손이 모과를 거두어 갔을까 내가 바라본 것은 모과뿐이었다 잠시 모과 이파리를 본 것도 같고 또 아주 잠시 모과 꽃을 보았던 것도 같은데 모과 이파리가 돋아나는 동안 그리고 모과 열매가 익어가는 내내 나는 모과만을 보았다 바라보면 볼수록 모과는 나의 것이었는데 어느.. 2007. 9. 26.
나는야 세컨드/김경미 <벌개미취> 나는야 세컨드 /김경미 누구를 만나든 나는 그들의 세컨드다 ,라고 생각하고자 한다 부모든 남편이든 친구든 봄날 드라이브 나가자던 자든 여자든 그러니까 나는 저들의 세컨드야, 다짐한다 아니, 강변의 모텔의 주차장 같은 숨겨놓은 우윳빛 살결의 세컨드,가 아니라 그냥 영어로 두 .. 2007. 9. 13.
뒷산에서 길을 잃다/곽효환 뒷산에서 길을 잃다 /곽효환 우습지 않은가 뒷산에서 길을 잃다니 눈 아래로 낯익은 얼굴들이 빤히 보이는데 한 달에 몇 번씩 오르는 뒷산에서 물통을 두고 온 약수터를 찾지 못해 두 시간씩 세 시간씩 오르내리는 꼴이라니 더 우스운 사실은 그곳에서 만난 사람 누구도 길을 모르더라는 사실이지 - 그.. 2007. 9. 8.
이제 그것을 사랑이라 말하지 않네 / 김선태 이제 그것을 사랑이라 말하지 않네 /김선태 내가 뱉어 놓은 말들이 나를 끌고 가지 못할 때 나는 눈을 감네 어둑한 공터 옆에 쭈그린 내가 있네 누추한 기관 고장의 트럭처럼 멈춰 있네 젊음이라는 쓰다 만 폐품같은 이름표를 달고 가난이 진열된 거리를 지나왔네 나는 거기에 오래 눈길을 주었지만 그.. 2007. 8. 17.
흐린 날에는 / 나희덕 흐린 날에는 /나희덕 너무 맑은 날 속으로만 걸어왔던가 습기를 견디지 못하는 마음이여 썩기도 전에 이 악취는 어디서 오는지, 바람에 나를 널어 말리지 않고는 좀더 가벼워지지 않고는 그 습한 방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바람은 칼날처럼 깊숙이, 꽂힐 때보다 빠져나갈 때 고통은 느껴졌다. 나뭇잎들.. 2007. 8. 12.
사랑한다. 배고픔이여 / 강수 사랑한다. 배고픔이여 /강 수 배가 고프다, 그대 멀리 있으면 그대가 보이고 가까이 있으면 그대보다 그대의 배경이 더 잘 보인다 자꾸 나는 배가 고프다 오랫동안 보지 않으면 그대가 가까이 다가오고 자주 보면 볼수록 그대는 멀리 달아나 버린다 나는 너를 갖고 싶다고 말을 하지만 너를 갖는 순간, .. 2007. 8. 10.
풍란의 죽음 / 강석화 풍란(風蘭)의 죽음 강석화 겨우내 쌓여있던 눈이 녹아 꽃밭에 새싹이 숨어있나 했더니 말라죽은 풍란 한 포기 미이라처럼 묻혀 있었네 한 때는 내 사랑을 받아 마시며 타다 남은 숯 위에서도 푸르렀는데 어느 날 다른 님에 자리 뺏기고 잡초처럼 시들어 버려졌구나 캄캄한 땅 속에서 하고팠을 말 하루 .. 2007. 8. 1.
운우지정 / 이선이 까치수염 운우지정(運雨之情) /이선이 뒤곁에서 서로의 똥구멍을 핥아주는 개를 보면 개는 개지 싶다가도 이 세상에 아름다운 사랑이란 저리 더러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머물러서는 마음도 미끄러진다 평생 바람처럼 활달하셔서 평지풍파로 일가一家를 이루셨지만 그 바람이 몸에 들어서는 온.. 2007. 7. 14.
비의 사랑 / 문정희 비의 사랑 / 문정희 몸 속의 뼈를 뽑아내고 싶다. 물이고 싶다. 물보다 더 부드러운 향기로 그만 스미고 싶다. 당신의 어둠의 뿌리 가시의 끝의 끝까지 적시고 싶다. 그대 잠속에 안겨 지상의 것들을 말갛게 씻어내고 싶다. 눈 틔우고 싶다. 2007. 7. 10.
젖지 않는 마음 - 편지 3 / 나희덕 젖지 않는 마음 - 편지 3 /나희덕 여기에 내리고 거기에는 내리지 않는 비 당신은 그렇게 먼 곳에 있습니다. 지게도 없이 자기가 자기를 버리러 가는 길 길가의 풀들이나 스치며 걷다 보면 발 끝에 쟁쟁 깨지는 슬픔의 돌멩이 몇 개 그것마저 내려놓고 가는 길 오로지 젖지 않는 마음 하나 어느 나무 그.. 2007. 7.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