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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온 시

운우지정 / 이선이

by 여름B 2007. 7. 14.

 

 

 

                                                                                                 까치수염

           

                            운우지정(運雨之情)

       

                                                                                     /이선이


      뒤곁에서
      서로의 똥구멍을 핥아주는 개를 보면
      개는 개지 싶다가도
      이 세상에 아름다운 사랑이란 저리 더러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머물러서는
      마음도 미끄러진다

       

      평생 바람처럼 활달하셔서
      평지풍파로 일가一家를 이루셨지만
      그 바람이 몸에 들어서는 온종일 마루바닥만 쳐다보시는 아버지
      병수발에 지친 어머니 야윈 발목 만마지작거리는 손등을
      희미한 새벽빛이 새겨두곤 할 때
      미운정 고운정을 지나면 알게 된다는
      더러운 정이라는 것이 내게도 바람처럼 스며드는 것이다

       

      그런 날 창 밖에는 어김없이 비가 내려
      춘향이와 이도령이 나누었다는 그 밤이 기웃거려지기도 하지만
      그 사랑자리도 지나고 나면
      아픈 마나님 발목 속으로
      불구의 사랑이 녹아드는 빗소리에 갇히기도 하는데

       

      미웁고 더럽고 서러운 사람의 정情이란 게 있어
      한바탕 된비 쏟아내고는 아무 일 없는 듯 몰려가는
      구름의 한 생生을 머금어 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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