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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온 시207

간격 / 이정하 간격 /이정하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서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데 동의하는 일입니다. 내가 가져야 할 것과 내가 가져선 안 되는 것 사이의 간격을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안타까운 것. 가져선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 자꾸만 마음이 기웃거려지는, 꼭 그 간격만큼 슬픈... 2007. 7. 5.
만남을 위한 초고 만남을 위한 초고 /손종일 무작정 만나고 싶다. 첫 눈이 소담스럽게 내리는 날에 나를 위해 오후를 비워 두고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내 얘기를 들어 줄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약속은 하지 않았어도 토요일 오후마다 내가 잘 가는 다방에서 빨간 장미 한 송이와 함께 갈색 음악을 조용히 새기고 있을.. 2007. 6. 29.
반성 608 / 김영승 반성 608 /김영승 어릴 적 어느 여름날 우연히 잡은 풍뎅이 껍질엔 못으로 긁힌 듯한 깊은 상처의 아문 자국이 있었다 징그러워서 나는 그 풍뎅이를 놓아 주었다 나는 이제 만신창이가 된 인간 그리하여 주(主)는 나를 놓아주신다 저번 주말에 딸에게서 온 문자다. 다음 주 금요일에는 바람도 피지 말고 .. 2007. 6. 26.
반성 902 / 김영승 반성 902 / 김영승 하나님 아버지 저는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지 날이 갈수록 머리가 띨띨해져 갑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요즘 술을 마시지 않는데도 머리가 띨띨해졌음을 느낀다. 가령 출근길, 자동차 열쇠를 가지고 나오지 않아서 창문으로 던지라는 전화를 해놓고 있다가 아내가 던지는 열쇠 뭉.. 2007. 6. 24.
사랑한다는 것/안도현 사랑한다는 것 /안도현 길가에 민들레 한송이 피어나면 꽃잎으로 온 하늘을 다 받치고 살듯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직 한 사람을 사무치게 사랑한다는 것은 이 세상을 전체를 비로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차고 맑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우리가 서로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은 그대는 나의 세상을 .. 2007. 6. 21.
옹기전에서/정희성 옹기전에서 /정희성 나는 웬지 잘 빚어진 항아리보다 좀 실수를 한 듯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아내를 따라와 옹기를 고르면서 늘 느끼는 일이지만 몸소 질그릇을 굽는다는 옹기전 주인의 모습에도 어딘다 좀 빈데가 있어 그것이 그렇게 넉넉해 보였다 내가 골라놓은 질그릇을 보고 아내는 곧장 화를 내.. 2007. 6. 20.
바람 속을 걷는 법 / 이정하 바람 속을 걷는 법 / 이 정하 그대여! 그립다는 말을 아십니까 그 눈물겨운 흔들림을 아십니까 오늘도 어김없이 집 밖을 나섰습니다 마땅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걷기라도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함께 걸었던 길을 혼자서 걷는 것은 세상 무엇보다 싫었던 일이지만 그렇게라도 해야지 어쩌겠습.. 2007. 6. 14.
적막이라는 이름의 절 / 조용미 적막이라는 이름의 절 /조용미 적막이라는 이름의 절에 닿으려면 간조의 뻘에 폐선처럼 얹혀 있는 목선들과 살 속까지 내리꽂히며 몸을 쿡쿡 찌르는 법성포의 햇살을 뚫 고 봄눈이 눈앞을 가로막으며 휘몰아치는 저수지 근처를 돌아야 한다 무엇보다 오랜 기다림과 설렘이 필요하다 적막이라는 이름.. 2007. 6. 2.
사랑이란 / 류시화 사랑이란 / 류시화 또 다른 길을 찾아 두리번 거리지 않고 그리고 혼자서는 가지 않는 것 지치고 상처입고 구멍 난 삶을 데리고 그대에게 가고 싶다. 우리가 더불어 세워야 할 나라 사시장철 푸른 풀밭으로 불러다오 나도 한 마리 튼튼하고 착한 양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2007. 5. 29.
패랭이꽃 /류시화 패랭이꽃 / 류시화 살아갈 날들보다 살아온 날이 더 힘들어 어떤 때는 자꾸만 패랭이꽃을 쳐다본다 한때는 많은 결심을 했었다 타인에 대해 또 나 자신에 대해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바로 그런 결심들이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삶이란 것은 자꾸만 눈에 밟히는 패랭이꽃 누군가에게 무엇으로 남길 바라지.. 2007. 5. 26.
목숨의 노래 / 문정희 목숨의 노래 /문정희 너 처음 만났을 때 사랑한다 이 말은 너무 작았다. 같이 살자 이 말은 너무 흔했다. 그래서 너를 두곤 목숨을 내걸었다. 목숨의 처음과 끝 천국에서 지옥까지 가고 싶었다. 맨발로 너와 함께 타오르고 싶었다. 죽고 싶었다. 그랬다. 죽어버리고 싶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기에....... 2007. 5. 22.
간이역 / 정공채 간이역 / 정공채 피어나는 꽃은 아무래도 간이역 지나치고 나면 아아, 그 도정(道程)에 꽃이 피어 있었던가 잠깐 멈추어서 그때 펼 것을, 설계(設計) 찬란한 그 햇빛을...... 오랜 동안 걸어온 뒤에 돌아다 보면 비뚤어진 포도(鋪道)에 아득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제 그 꽃은 지고 지금 그 꽃에 미련은 .. 2007. 5. 16.
꿈꾸지 않았던 길 / 도종환 꿈꾸지 않았던 길 /도종환 꼭 함께 있기를 바랐던 사람이 아닌 전혀 생각지 않았던 사람과 지금 이 모래밭에 함께 있구나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꼭 하고 싶었던 그 말 가슴속 깊은 우물에 넣어두고 전혀 생각지 않았던 말들만 빈 두레박에 담아 건네는 때가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러하겠지만 살아 있.. 2007. 5. 13.
해당화 / 한용운 해당화 / 한용운 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니다. 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랐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무 일찍 왔나 두려합니다. 철모르는 아이들은 뒷동산에 해당화가 피었다고 다투어 말하기로 듣고도 못 들은 체하였더니 야속한 봄바람은 나는 꽃을 불.. 2007. 5. 6.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도종환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도종환 저녁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 2007. 5.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