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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온 시

뒷산에서 길을 잃다/곽효환

by 여름B 2007. 9. 8.

 

                               

                    뒷산에서 길을 잃다
                                           /곽효환 
          우습지 않은가 
          뒷산에서 길을 잃다니 
          눈 아래로 낯익은 얼굴들이 빤히 보이는데 
          한 달에 몇 번씩 오르는 뒷산에서 
          물통을 두고 온 약수터를 찾지 못해 
          두 시간씩 세 시간씩 오르내리는 꼴이라니 
          더 우스운 사실은 
          그곳에서 만난 사람 누구도 
          길을 모르더라는 사실이지 
          - 그냥 길을 따라 걷고 있을 뿐이더라구 
          약수터에 두고 온 때 낀 물통만 아니었다면 
          그들처럼 그냥 길을 따라 걸으련만 
          차마 손 타고 물때 낀 물통을 포기할 순 없더군 
          자네도 길을 잃어보게 
          뒷산에서 길을 잃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약수터에 두고 온 물통을 포기할 수 있는지 
          우습지 않은가 
          뒷산에서 길을 잃다니    
           
                우습지요? 당신도 잘 아시잖아요. 살다보면 또 그게 아니단 걸..... 이젠 익숙해져 그만 잃을 때도 되었는데, 매번 잃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도 소용없이 문득문득 길 위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혹시 길이 나를 잊은 것은 아닐까?
                2007. 09. 08. 여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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