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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온 시207

잠수에 대한 오해 / 김종미 잠수에 대한 오해 /김종미 -오래 잠수 하셨네요 오랜만에 헬스장에 나가니 관장이 하는 말 -네? 두 번 되물어서 이해를 받아낸다 아, 나는 그동안 잠수 중이었구나 그러면 여기는 물위인가? 저렇게 숨이 차게 뛰고, 저렇게 힘이 부치도록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고, 몸을 비틀어 대는 저렇게 제 몸을 닦달.. 2008. 7. 4.
장미는 손님처럼 / 문성해 장미는 손님처럼 /문성해 어느새 파장 분위기로 술렁거리는 장미원에 올해도 어김없이 장미가 다니고 가신다 한번 다니러 오면 한 생애가 져버리는 우리네처럼, 이승이란 있는 것 다 털고 가야 하는 곳이라서 꽃술과 꽃잎을 다 털리고 가는 저 꽃들 그래도 말똥구리로 굴러도 이승이 좋은 곳이라고 빨.. 2008. 6. 14.
거짓말을 타전하다 / 안현미 거짓말을 타전하다 / 안현미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 산꼭대기에서 살았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사무원으로 산다는 건 한 달치의 방과 한 달치의 쌀이었다. 그렇게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 살았다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도 슬프지 않았다 가끔 대학생이 된 친구들을 만.. 2008. 6. 9.
김미선 / 송기역 김미선 /송기역 우편함에 나에게 온 편지는 없고 김미선에게 보낸 편지가 놓여 있다 어느 날부턴가 우편함을 열어 볼 때마다 나는 김미선을 찾고 있었다 몇 해 전 내 집에 살았던 흔하디흔한 성과 이름의 여자 이삿날 보았던 눈보다 주근깨가 먼저 보이던 여자 편지가 이른 날이면 나와 함께 밤을 뒤척.. 2008. 6. 6.
단추를 채우면서/천양희 단추를 채우면서 /천양희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 2008. 6. 2.
순간 / 문정희 순간 /문정희 찰랑이는 햇살처럼 사랑은 늘 곁에 있었지만 나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지 못했다 쳐다보면 숨이 막히는 어쩌지 못하는 순간처럼 그렇게 눈부시게 보내버리고 그리고 오래오래 그리워했다 언젠가 수벌처럼 생애 단 한 번의 비행을 위하여 날개짓을 하고 싶었던 날이 있었다. 2008. 02. 01. .. 2008. 2. 1.
절반의 추억 / 정우경 절반의 추억 너의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한쪽 가슴이 몹시도 아파왔다. 아름다운 인연조차 서러운 날에 눈물도 없이 젖어오는 나의 눈시울. 아마도 사랑한 날보다 더 많은 무게의 그리움 때문일 게다. 스치는 그대의 미소만으로도 이토록 숨가뿐 나의 슬픔을 모두 얘기할 순 없지만. 사랑하기에 너를 .. 2008. 1. 18.
더 깊은 눈물 속으로 / 이외수 더 깊은 눈물 속으로 /이외수 흐린 날 바다에 나가 보면 비로소 내 가슴에 박혀 있는 모난 맷돌들이 보인다 결국 슬프고 외로운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라고 흩날리는 물보라에 날개 적시며 갈매기 한 마리 지워진다 흐린 날 바다에 나가 보면 파도는 목놓아 울부짖는데 시간이 거대한 시체로 백사장에 .. 2008. 1. 14.
겨울 숲에서 / 안도현 겨울 숲에서 /안도현 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 첫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 나는 겨울 숲에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 헐벗은 나무들도 모두 그래서 사.. 2007. 12. 31.
흐린 날의 연서 / 정설연 흐린 날의 연서 /정설연 흐린 날은 흙냄새가 난다고 말을 갓 배운 아이처럼 더듬거리며 말한다 흐린 날은 그리움도 속짐작인 채 아득해 보여 당신이랑 마주쳐도 모르고 지나친다고, 자꾸 거울 속의 내 이목구비를 한없이 바라본다 가슴이 만들어낸 공간을 채울 수 없어 눈을 감으면 속눈썹에 매달려 .. 2007. 12. 28.
외로운 날에 / 이수인 외로운 날에 이수인 외로운 날에 산길을 걸어 보라 나무들도 모두 혼자서 제 자리에 서있다 외로워서 가지 마다 잎사귀를 두르고 외로워서 바람 불면 잎파리를 흔든다 외로워서 산새들을 불러 둥지를 틀어 주고 외로워서 호수가에 제 그림자를 들여다 보고 외로워서 밤이면 달빛과 속삭인다 2007. 12. 15.
달을 몰고 온 사내 / 이영숙 달을 몰고 온 사내 /이영숙 어디서부터 따라왔을까 택시 정류장에 내가 멈추어 서자 달을 몰고 온 사내 야타족처럼 내 앞에 멈추어 선다 서로의 얼굴이 마주쳤으니 은밀한 곳이라도 가자는 것인가 불량여자처럼 내가 먼저 어디로 가자고 말을 걸었다 달빛이 귓속말로 더듬거릴 때마다 달리는 속도만.. 2007. 12. 9.
쓰다만 편지/윤성택 쓰다만 편지 /윤성택 주전자가 열기를 밀어 올리며 달그락거린다 넘칠 듯 넘치지 않는 생각들 물 끓는 소리가 고요한 방안을 적신다 한쪽으로 몸을 내맡긴 풀들과 나무 바람에 날리는 잎새들, 닫힌 유리창 밖에서 웅웅- 소리가 들린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저녁, 문득 첫눈이 보고 싶다 하얀 오선지 .. 2007. 11. 29.
저무는 바다를 머리맡에 걸어두고/ 이외수 저무는 바다를 머리맡에 걸어두고 / 이외수 살아간다는 것은 저물어 간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사랑은 자주 흔들린다 어떤 인연은 노래가 되고 어떤 인연은 상처가 된다 하루에 한 번씩 바다는 저물고 노래도 상처도 무채색으로 흐리게 지워진다 나는 시린 무릎을 감싸 안으며 나지막이 그대 이름을 부.. 2007. 11. 26.
오래된 사랑/박수현 오래된 사랑 /박수현 반달이 골목 끝을 가로막던 밤이었다. 그가 줄장미 번져 오른 담벼락으로 갑자기 나를 밀어 부쳤다. 블록담의 까 슬함만이 등을 파고 들던 밝지도 어둡지도 않는 첫 키스 의 기억. 사랑이란 그렇게 모래 알갱이만한 까슬한 감각 을 몸속에 지니는 것. 해마다 줄장미가 벙글어 붉은 .. 2007. 1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