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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온 시

사랑한다. 배고픔이여 / 강수

by 여름B 2007. 8. 10.
 

      사랑한다. 배고픔이여 /강 수 배가 고프다, 그대 멀리 있으면 그대가 보이고 가까이 있으면 그대보다 그대의 배경이 더 잘 보인다 자꾸 나는 배가 고프다 오랫동안 보지 않으면 그대가 가까이 다가오고 자주 보면 볼수록 그대는 멀리 달아나 버린다 나는 너를 갖고 싶다고 말을 하지만 너를 갖는 순간, 너는 사라지고 만다 밥먹기를 거부하며 죽어간 사람을 알고 있다 직선으로 난 길은 가까운 것 같지만 멀고 구부러진 길은 먼 것 같지만 가깝다 만지면 그대가 지워져 버리고 키쓰를 하면 그대가 녹아 버린다 아, 밥먹기의 고통스러움이여 가로등은 누구를 위해 불을 밝히고 등대는 누구를 위해 불을 밝히는가 잠시 불을 꺼 두자 길을 잃고 헤매더라도 가슴이 벌겋게 달궈지더라도 너무 쉽게 불을 켜지 말자 우리의 사랑을 위해서는 어둠이 알맞다 나의 배고픔을 사랑한다, 그대여
 

        어릴 때 흙먼지 둘러쓰며 놀다보면 문득 허기가 졌다. 

        끼니를 거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배가 고팠다.

        그 허기의 기나 긴 기간을

        나도, 함께 놀던 친구들도 어떻게 매꾸어 볼

        작은 주머니 하나 가지지 못했다.

        "야, 나중에 우리 부자 되면 맛있는 것 모두 사 먹자"

        동네 구멍 가게 앞에서 코를 훌쩍이고 누군가 말했다.

         

        이제 세상이 기름져 내 배도 둥그스름해졌지만

        아직도 나는 배가 고프다.

         

        그저, 조금의 허기를 남겨 놓고 싶다.

         

                                            2007. 08. 10.   여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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