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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온 시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도종환

by 여름B 2007. 5. 3.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도종환

         

        저녁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었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 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대아리 수목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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