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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온 시

간격 / 이정하

by 여름B 2007. 7. 5.

 

 



    간격 /이정하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서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데 동의하는 일입니다. 내가 가져야 할 것과 내가 가져선 안 되는 것 사이의 간격을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안타까운 것. 가져선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 자꾸만 마음이 기웃거려지는, 꼭 그 간격만큼 슬픈...

     

     

     

        베드민턴을 신나게 치고와서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아내는 이탈리안 돈까스를 시켰다.

        나도 같은 것으로 시키려다가 객지에서 고생하는 애들을 생각하고

        그냥 돈까스를 시켰다.

        당연히 아내도 그냥 돈까스로 바꾸어 주문할 줄 알았는데 그냥 밀고 나간다.

        '이것 봐라. 감히 나보다 비싼 것을 시켜?'

        내 머리에서는 주판알이 튕겨지기 시작했다.

         

        이탈리안 돈까스 10,000원

        돈까스 7,000원

        10,000 - 7,000 = 3,000

         

        아내와 나 사이에 3,000원이라는 간격이 갑자기 생겼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나는 한일해협보다도 넓은 그 간격을 매우지 못해

        소 닭보듯 말없이 앉아 있었다.

         

        아내는 이탈리안 돈까스를 신나게 썰고 나는 그냥 돈까스를 말없이 썬다.

        내가 절반 정도를 썰자 아내는 

        "그만"

        하고 소리친다.

        치즈가 잘 녹아 흐르는 3,000원이 아내의 포크에 찔려 내 접시로 건너오고, 

        내 그냥 돈까스의 절반이 아내의 접시로 강제 이주 된다.

        아니, 그럼 내 돈은 얼마가 이주된 것인가?

        아이, 이탈리안 돈까스가 입에 있으니 계산이 안 된다.

         

        얼마가 이주되었는지 맞추신 분께는 풍림모텔 평생 무료관람권을 보내드립니다.

         

                                       

                         우리집 기사 열쇠와 그 동안 외식할 때 단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는 아내의 지갑

     

                                                                                           2007.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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