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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온 시

김미선 / 송기역

by 여름B 2008. 6. 6.

 

 

 

    김미선 /송기역 우편함에 나에게 온 편지는 없고 김미선에게 보낸 편지가 놓여 있다 어느 날부턴가 우편함을 열어 볼 때마다 나는 김미선을 찾고 있었다 몇 해 전 내 집에 살았던 흔하디흔한 성과 이름의 여자 이삿날 보았던 눈보다 주근깨가 먼저 보이던 여자 편지가 이른 날이면 나와 함께 밤을 뒤척이는 여자 마음 다칠까 열어 보지 못한 편지는 어둑한 우편함 속에 며칠씩 잠들다 사라지곤 했다 그런 밤이면 나는 비어 있는 외풍 든 방 한 칸을 김미선이라 불렀다 불이 들지 않는 그녀를 생각하곤 내 방도 불이 꺼지곤 했다 기울임체로 새겨진 편지는 김미선을 찾아 한 달에 한두 번 도착했다 한 번은 주인집 대문 앞에 떨어진 편지에서 커피 얼룩을 본 적이 있다 그 위에 찍힌 발자국은 여러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셋방을 얻지 못해 여자는 고시원 주소를 바꾸고 바꾸고 하거나 주홍색 우체통 앞에서 한 쪽 가슴을 잃어 버리고 지워진 주소가 되어 편지지를 접고, 접고, 김미선의 편지가 보이지 않게 되면서 내게 오는 편지보다 여자의 편지를 더 기다리게 되었다 오랜만에 도착한 소식을 겨드랑이에 끼우고 언 손 비벼 가며 십년 전 나의 김미선에게 사연을 썼다 지우고 지웠다 다시 쓰는 동안 누군가도 내가 받을 방 한 칸을 쓰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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