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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온 시

겨울 숲에서 / 안도현

by 여름B 2007. 12. 31.

 

                     겨울 숲에서

           

                                                      /안도현


           

          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
          첫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
          나는 겨울 숲에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
          헐벗은 나무들도 모두
          그래서 사랑에 빠진 것이겠지요
          눈이 쌓일수록
          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송두리째 버리는 숲을 보며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내 마음 속 헛된 욕심이며
          보잘것없는 지식들을
          내 삶의 골짜기에 퍼붓기 시작하는
          저 숫눈발 속에다
          하나 남김없이 묻어야 함을 압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따뜻한 아궁이가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
          내가 돌아가야 할
          길도 지워지고
          기다림으로 부르르 몸 떠는
          빈 겨울 나무들의 숲으로
          그대 올 때는
          천지사방 가슴 벅찬
          폭설로 오십시오
          그때까지 내 할 일은
          머리 끝까지 눈을 뒤집어쓰고
          눈사람되어 서 있는 일입니다.



             
              온통 천지는 백색의 도화지로 변했습니다. 그 동안 눈이 오지 않는다고 투덜거렸던 가벼운 마음에 마치 오기라도 부리듯 아직도 저렇게 쏟아붓고 있습니다. 올 한 해, 돌아보니 무엇 하나 변변히 이룬 것이 없고 아쉬움만 그림자처럼 슬프게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또 한 해가 기울어 갑니다. 이런 것이 우리의 삶이겠지요. 그 동안 제 방에 발자욱을 남겨 주신 고운님들. 새해에도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2007. 12. 31. 여름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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