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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명암 가는 길 오늘은 사월 초파일 월명암을 찾았다. 한 30년 되었을까? 다녀간지...... 허공을 향하여 앵글을 돌려 보았다. 월요일에 직소폭포를 갔었는데 그날의 산경이 무척이나 깨끗했다. 그때 카메라를 차에 두고 가지고 가지 않았기에 오늘은 사진도 찍을 겸 월명암을 가 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날씨가 .. 2006. 5. 5.
사월에 사월에 봄에도 외로움을 타는가 사월의 바람 속이 겨울보다 매서웁구나 옷깃을 세우면서 외롭다고 해도 되는 것일까 저 새 하얀 허공 홀로 바람 속을 헤매는데 이 찬란한 봄에 외로움에 젖어도 되는가 외롭다고 말해 놓고 왜 이렇게 부끄러운가 혼자라는 것이 이렇게도 부끄러운 것인가 이 봄에는 2006.. 2006. 4. 29.
내 전생은 내 전생은 내 전생은 결국 장돌림이었을까? 막걸리 사발로 위벽을 데우고 초사흘 희미한 밤길을 흥얼거리며 걸어 가는 그림자 얼어붙지 않은 개울을 건너가며 종종 이름 모를 들짐승의 파란 울음소리를 들었다. 혼불이 반짝이는 개여울에 담배불 밝힐 때 놀란 꿩 푸드득 날아 올랐지 먼 길 떠나지 못.. 2006. 4. 22.
살구꽃 살구꽃 /문신 해마다 4월이면 쌀 떨어진 집부터 살구꽃이 피었다 살구꽃은 간지럽게 한 송이씩 차례대로 피는 것이 아니라 튀밥처럼, 겨우내 살구나무 몸통을 오르내리며 뜨겁게 제 몸을 달군 것들이 동시에 펑, 하고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살구꽃은 검은 눈망울을 단 아이들이 맨발로 흙밭을 뒹구는 .. 2006. 4. 16.
산도화 산 도 화 산도화 꽃 진 자리에 수캉아지 성기같은 씨방들이 가지마다 붙어 있다 그래도 꽃을 피웠다고 주인의 눈을 속여 가며 열매를 맺었구나 서툰 인연 피우다가 세월 하나 수정시키지 못하고 이슬로 흘려 보내는 봄 2006.04.09 2006. 4. 9.
자반 고등어 자반 고등어 /유홍준 얼마나 뒤집혀졌는지 눈알이 빠져 달아나고 없다 뱃속에 한 움큼, 소금을 털어 넣고 썩어빠진 송판 위에 누워 있다 방구석에 시체를 자빠뜨려 놓고 죽은 지 오래된 생선 썩기 전에 팔러 나온 저 女子, 얼마나 뒤집혔는지 비늘, 다 벗겨지고 없다 (현대시 2001년 4월호) 2006. 4. 8.
요실금 요 실 금 -김선우 일찍이 오줌을 지리는 병을 얻은 엄마는 네 번째 나를 낳았을 때 또 여자아이라서 쏟아진 양수와 핏덩이 흥건한 이부자리를 걷어 내처 개울로 빨래 가셨다고 합니다 음력 정월 요실금을 앓는 여자의 아랫도리처럼 얼음 사이로 소리 죽여 흘렀을 개울물, 결빙의 기억이 저를 다 가두지.. 2006. 4. 4.
홑청을 입히며 홑청을 입히며 아내가 거실에서 홑청을 입히고 있다 딸이 덮고 자던 겨울 이불이다 나는 등받이 하나 달래서 이불 한 쪽에 대고 누워 딸같이 예쁜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를 본다. 문을 열면 열기 없는 공간에 불을 끄고 자리에 반듯하게 누운 작은 딸이 인형처럼 눈을 반짝인다. 이불을 턱까지 올렸다. .. 2006. 4. 1.
바람 바람 저도 그냥 가기 싫었던 게지 삼 월이 다가도록 저승으로 가지 못한 처녀 귀신마냥 기다리고 있었을거야 그래서 이처럼 매서운 게지 깃발이 찢어지도록 제 몸을 내던지면서 2006/03/28 여름비 2006. 3. 28.
단강 가는 길 丹江 가는 길 /이상희 소도시 끄트머리에서 산마을까지 달리는 시골버스 굽이굽이 산길 날뛰다 말고 노파 하나 내려놓을 때 보았다 버스 문 열리자마자 바깥으로 내던지는 지팡이, 출구 난간을 붙드는 두 손, 기어서 내려가는 늙은 몸. 그리고 다시 부르릉대며 날뛰는 차창 너머 먼지구름 사이로 보았.. 2006. 3. 25.
무량사에서 무량사에서 노란 잎 떨구던 저녁 바람 어스름보다 먼저 지쳐 쓰러지고 동승의 빗장소리 사체마다 문을 닫는다. 좁다란 포도 위에 인적이 끊어지면 어둑어둑 무성해지는 잡풀 속 벌레소리들 밭아진 개울에는 숨을 죽인 지친 적막 바람도 맨땅에 모로 누워 하루를 감는다 바람 끝에 들려오는 흐느끼는 .. 2006. 3. 21.
선창에서 선창에서 얼음 조각 몇 개 싣고 밀려온 흙탕물이 잠시 머물다 서서히 뒷걸음질을 친다 희망을 낚겠다고 두터운 방한복들이 장항 제련소 굴뚝을 향하여 납덩이를 던진다 끝 간 데서 건져 올리는 건 언제나 찢어진 하루. 2006/01/14 여름비 2006. 3. 19.
늙은 거미 늙은 거미 /박제영 늙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 당신, 늙은 거문개똥거미가 마른 항문으로 거미줄을 뽑아내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당신, 늙은 암컷 거문개똥거미가 제 마지막 거미줄 위에 맺힌 이슬을 물 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당신, 죽은 할머니 가 그러셨지. 아가, 거미는 제 뱃속의 내.. 2006. 3. 15.
훌쩍 훌 쩍 /이진수 겨울 세상에 왔던 청둥오리떼가 돌아가려는지 비행 연습 중이다 공중에서 씨이-씨이-하는 날개 소리가 들린다 어떤 날개에선 씨발-씨발-하는 소리가 나기도 한다 술과 욕으로 찌들었던 우리 동네 김씨도 오늘낼 오늘낼 한다 (시와정신 2004 여름호) 2006. 3. 9.
병원에서 병원에서 소아암 병동에는 시원한 까까중이 된 작은 웃음들이 뛰어다닌다. 저마다 반짝이는 민대머리에 파랗게 그려놓은 좌표 내일이면 다가올 기계소리 한지만큼 얇은 저 껍질 아래 그 축이 만나는 어느 꼭지점에 있을 작은 고통 하나씩 안고서도 울음이 자리 잡았던 복도 구석까지 숨바꼭질로 어린.. 2006. 3.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