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끄적이기81

전남 증도에서 화도가는 길 꽃섬 물이 난 뻘밭 위를 겨울새들 한 무리 빠르게 지나간다 조금 무렵이겠지 뻘밭에 녹지 않고 남은 눈이 치맛자락처럼 섬을 두르고 있다 홀로 호미질하는 아낙네의 허리는 노둣길에 세워 둔 녹슨 유모차보다 낡아서 펼 때마다 끙끙 소리가 난다 한 번 발을 디뎌 보면 또 다시 오르고 싶.. 2018. 2. 11.
영화 1987 보고 나서 '1987' 영화 속에 광주민주화운동 장면이 TV에 잠깐 비쳤다. 공수부대원 두 명이 학살한 광주 시민의 양다리를 거꾸로 들고 질질 끌고 가는 모습이다. 순간 내 마음의 어느 곳에 남아 있었을까. 폭포수같이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아직도 시체조차 찾지 못한 광주의 .. 2018. 1. 8.
헐렁한 이야기 헐렁한 이야기 목이 헐렁한 옅은 하늘색 옷을 입고 온 영란이의 목소리가 4월의 푸르름을 담은 햇빛보다 더 빛나던 캠퍼스는 모두 젊었었다. 누가 손을 집어 넣었간디 그렇게 목이 늘어났어? 영란이는 내 말을 그대로 복사해 다른 여학생들에게 깔깔거리며 들려 주고 목을 타고 손을 집어 넣고 싶어하.. 2008. 9. 24.
여름 여 름 장마도 지쳐 졸고 있는 오후 시든 덩쿨장미만이 지나 가는 바람에 가끔씩 고개를 흔든다 무슨 시간일까? 조용히 말을 나누며 걸어 가는 하얀 교복 두 벌 2008.06.30 좀 쉬려 했더니 머섬이가 "오빤 요즘 아그덜 군대 보내고 딸 취직하고.. 넘 편해서 퍼질러 노니? ㅋㅋㅋ" 요렇게 깔겨 놨네요. 그래, .. 2008. 6. 30.
그 해 유월의 아침에 그 해 유월의 아침에 그 누가 미처 챙기지 못하고 쫓겨 갔을까 저 꽃같은 운동화 한 짝 물대포에 밀리다 바닥이 저렇게 닳았구나 아직도 갈 길은 구만 리인데 얼마나 더 발이 아파야 할까 일용 노동자의 목에 걸려 땀을 닦던 저 수건은 방패에 찢긴 이마처럼 얼룩이 졌는데 촛불을 감싸 주던 종이컵들.. 2008. 6. 4.
연필을 깎으면서 연필을 깎으면서 국민학교 1학년 5반 때 내 뒤에 앉았던 얼굴이 검은 준식이. 쉬는 시간이면 도루코 칼로 참 예쁘게도 연필을 깎았다. 밤톨처럼 다듬어진 그 머리들이 키가 큰 순서대로 가지런히 고운 필통 속에 뉘어지면 미소 띤 하얀 이가 칼을 접어 뚜껑을 닫았다.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성당 신용협.. 2007. 12. 6.
죄인 죄 인 당신을 사랑하는 게 죄가 될 줄이야 그날 무량사를 내려오는 길가의 은행잎이 너무나 노래 눈이 부셔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진한 속눈썹 같은 풍경 속에 저녁 안개는 술 취한 듯 마을 어귀에서 흐느적거리고 바람도 없는데 몸이 떨려 옴은 분명 계절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미산 계곡 작은 물.. 2007. 11. 11.
상처 상 처 가까워지면 다친다고 그녀는 그랬다. 처음엔 괜찮다고 했다. 그래도 거듭 상처를 받을 수 있다고 겁을 주기에 두려워서 가까이 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멈칫거리는 내게 다가와 귓속에 뜨거운 말을 집어 넣고 나를 흔들었다. 나는 다칠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녀는 괜찮다고 했다. .. 2007. 11. 4.
그대 그리운 그대 그리운 풀벌레 소리에 쫓겨 태양은 이제 저만치 물러 앉고 달빛 성글어 가을은 선잠 뒤척입니다. 이런 날 그대 눈 깊은 곳에 내 그리움을 숨겨 놓고 싶습니다. 2007. 10. 14. 여름비 대아리 수목원의 미모사 꽃 ... ... 2007. 10. 14.
공방 공 방 야, 너, 공방들었다? 점팔아 먹고 사는 처작은아버지가 오늘 그랬단다. 아내는 내 눈을 보며 말했다. 우습지? 나는 눈길을 피하며 말했다. 아니, 하나도...... 남도 땅끝마을의 처작은아버지는 어떻게 하룻밤 새 내 속을 다녀갔을까? 2007. 10. 07. 여름비 2007. 10. 7.
미루나무 미루나무 내 어릴 적 고향집엔 마당을 지나 텃밭끝 울타리에 걸쳐서 미루나 무 한 그루 서 있었다. 여름 날이면 모든 빗방울들은 온통 미루나 무에게 쏟아졌고 밝음이 어둠으로 변하는 시간이나 계절이 바뀌는 날에는 아주 작은 바람이라도 미루나무를 스쳐 지나갔다. 우리 집 울타리 안에선 미루 나.. 2007. 9. 27.
건망증 건 망 증 비가 내린다. 어두운 군산에도 내리더니 대전의 아침에도 내린다. 인삼축제 플래카드 흠씬 젖어 펄럭거리는 금산에도 내리고 새우젓 한 봉지 들고 걷는 강경 젓갈거리에도 조용조용 꾸준히 내린다. 비가 내린다. 벌곡휴게소에서 내 바지 조심성 없어 철푸덕 엉덩이를 적시더니 강경 역전 태.. 2007. 9. 1.
감자국 <감자꽃> 감자국 오랜만이네, 감자국 식탁에 앉으면서 국맛도 보지 않고 덥석 밥을 말아 버린다. 그랬었다 젊은 아내는 얇은 지갑을 열어 십구공탄들이 내려다 보는 헛간에 감자 상자 하나 들여 놓고 여름내 감자에 고추장 물을 들여 국을 끓였다. 질리지요? 아니, 맛있어. 김치 하나로 장식된 개다.. 2007. 6. 9.
분수 분수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시작하는 여행은 길에 머무는 동안 얼마나 힘이 들까 닿을 수 없는 당신을 향한 끝없는 발돋움 마지막 열기는 항상 가위눌림으로 젖은 머리 쓸면서 밤마다 스러지지만 이밤 다시 그대에게 가노니 찬란한 좌절을 위해 2007. 04. 13. 여름비 2007. 4. 12.
4월이 오기도 전에 목련은 지고 4월이 오기도 전에 목련은 지고 엿새를 기다려온 희망들이 재촉하며 떠난 우리에는 미처 숨을 끊지 못한 온풍기가 털어내지 못한 홍진으로 가래를 끓는다. 노려보던 화면들은 검게 변하고 본체도 이미 식은지 오래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서류들이 빼꼼이 바라보는 이웃집 마당 모이가 될 활자들이 서류.. 2007.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