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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이기81

겨울끝 겨울끝 이제 너에게 가던 빛을 향한 열망은 무참히도 끝이 났다 네 바람이 바뀔 때마다 고개를 젖혀가며 얼마나 숱한 날을 견뎌왔던가 가을이 바람을 타고 지나갔듯이 몇 번의 겨울이 숨죽인 폭풍을 일으키다 떠난 자리엔 무수한 종두 자욱만 남아 있는데 작아지는 가슴에 차마 거두지 못하는 눈길이.. 2007. 3. 14.
비가 오는 날 비가 오는 날 비가 오는 날 아내에게 끌려 마트에 갔다. 아내가 카트에 매달려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고 생활 속으로 떠난 뒤 하늘과 가장 가까운 옥상 근처의 창가에 서서 상념들이 유리창에 매달려 바람을 뚫고 조금씩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타워크레인 아래 덤프 트럭이 게으른 뒷걸음질을 .. 2007. 3. 11.
폐경기 폐경기 한때는 활화산으로 타올라 골짜기 붉게 물들이던 뜨거운 용암이 아직도 식지 못한 미열에 간헐천처럼 가끔씩 불끈거리는데 해가 져도 닫을 수 없는 문 2007. 02. 22. 여름비 이제는 접어야 하나? 널 향해 열어두었던 문고리를 잡고 나는 묻는다. 그래 안다. 사랑은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2007. 2. 22.
얼굴 얼굴 오고 가다가 꺾어지는 길에서 문득 만난 얼굴이 있다. 내 작은 이름으로하여 네게 웃음이 되고 미래가 되기를 바랐던 맑은 얼굴 하나 있다. 이제는 낙엽이 되고 흙이 되어버린 희미한 이름 잠시 입술에 앉았다 떠난 깃털 같은 2007/02/04 여름비 2007. 2. 4.
해망동에서 해망동에서 갈매기는 이 선창을 잃어버렸나 보다 비린내 사라진지 이미 오래 선착장의 전설이 되어버린 해망동에서 아내의 뒤를 놓치지 않으려고 또 다시 눈을 두리번 거렸습니다. 연평도 어장을 회유했다는 오래 전 선조들의 무용담도 모른 채 희뿌옇게 눈을 뜨고 상자에 얼어 붙어 면세유 타고 온 .. 2007. 1. 21.
동백꽃 며칠 전 물을 뿌리다 본 하얀 동백꽃. 불쌍하게 혼자 피어 있었습니다. 선운사 동백꽃 / 박장하 절을 찾았을 때는 이미 동박새가 울고 간 뒤였다 오도가도 못하고 동백꽃이 숨죽여 엎드려만 있었다 수 십년의 세월이 흐른 뒤 그 동백꽃을 장수강 하류 갈대숲에서 주워 입술에 부볐다 궂은 날이면 서해.. 2006. 11. 12.
자전거 배우기 . 자전거 배우기 초등학교 육 학년 때에야 나는 자전거를 배웠다. 외삼촌이 오신 날 내가 자전거에 매달려 동네를 쓸고 다니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비켜 갔었다. 외삼촌 가신다고 어머니의 높은 목소리가 동네를 점령하면 내 아쉬운 자전거 연습은 끝이 난다. 무릎과 팔에 남긴 빨간약 자국도 넘어.. 2006. 10. 19.
즐겨찾기 즐겨찾기 당신의 문을 들어서며 수많은 발자국들을 못 본 척 흘깃 바라봅니다. 별로서 반짝거리고 앙증맞게 깜찍하고 멋지고 의젓하고 그리고 예쁘고 정다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쳐 이제 당신보다 내 눈에 익숙한 그 얼굴들. 그대 옷자락 끝에 다가설 수 없어 오늘도 저문 가을빛 안타까움 하나 내.. 2006. 10. 11.
가을에 가을에 사랑한다는 것은 서서히 시들어 가는 것이라고 바래가는 꽃무릇을 보면서 붉게 웃어 주었지요. 억새는 시들어도 울지 않는다며 손등에 내린 이슬을 쓰다듬던 억새꽃보다 하얗던 당신의 손길. 끝내 내 가슴에서 봇물로 흐르던 뜨겁던 오열의 강. 어느덧 버석거리는 내 귓등에도 억새꽃 하얗게 .. 2006. 10. 7.
저녁에 저녁에 해거름 길가에 늦게 핀 달맞이꽃 노랗게 서성이고 새들이 돌아간 빈 저녁은 슬프다. 사랑도 바람 같이 비를 타고 훌쩍 날아 언덕을 넘어 가면 너처럼 피었던 꽃 이제는 저녁처럼 지고 말지. 타올랐던 열정의 계절도 허무롭게 황혼 속에 지고 말지. 2006.10.01. 여름비 2006. 10. 1.
풍란 풍란 생명이 끝난 줄 알고 마당 끝에 던져 놓았던 풍란이 어느 날 아침 혀를 달팽이처럼 내밀고 돌 틈을 기어 내려와 하얀 뿌리로 환생하는 모습을 보았다. 따개비처럼 모질게 생의 골에 달라붙어 하얗게 핏줄이 흐르기 시작하는 회생의 줄기 세상의 끝에 던져지더라도 우리 살아있어야 할 이유 한 가.. 2006. 9. 3.
수첩을 잃다 수첩을 잃다 수첩을 잃어버렸다. 내 손을 타고 들어와 세상 하나씩 만들어 놓고 갈피를 넘길 때마다 웃어 주던 얼굴들. 끝내 빛이 바랜 글씨로 남았던 구불구불한 오래 된 인연들이 내 불찰 속에 끝 모를 유영을 떠나 버렸다. 이미 지워지는 순간들마저 놓치기 싫은 저녁인데 한번에 보내 버렸다. 2006/08.. 2006. 8. 25.
이별 2 이 별 2 불을 끈 커튼 뒤에서 땅바닥을 찍는 너를 보았다. 한번쯤 와락 뛰어 나가 안아 주어도 부끄럽지 않은 내 발길이 맨발인들 어떠랴. 너 저 불빛 아래서 나 어둠 속에서 서로의 길이 어긋나 한 가닥 인연은 지고. 밤새 허공에 날려 보냈을 허무한 빈 껍질들이 산만큼 쌓인 새벽길에 슬픔이 하얗구나.. 2006. 8. 17.
이별 이별 너는 빈대떡에 소주를 부르고 나는 도가니탕을 시켰다. 종업원 아이는 내 지갑에서 빠져나갈 금액을 적어 식탁에 던져 놓았다. 목을 타고 빈속으로 들어가는 맛이 술의 제격이라는 말을 오늘은 하지 않았다. 너는, 2006/08/13 여름비 2006. 8. 13.
선그라스 1 선그라스 1 마음의 창은 눈이다. 어느 날 문득 누군가 창으로 나를 훔쳐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몰래 휴지를 버릴 때 꼭 누가 보고 있는 것 같다 한적한 길의 신호등을 무시하고 지나칠 때 또 어느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경건해야 할 상가에서 빵구난 양말을 발견했을 때 박힌 돌인 줄 모르.. 2006. 8.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