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거미
/박제영
늙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 당신, 늙은 거문개똥거미가 마른
항문으로 거미줄을 뽑아내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당신, 늙은
암컷 거문개똥거미가 제 마지막 거미줄 위에 맺힌 이슬을 물
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당신, 죽은 할머니
가 그러셨지. 아가, 거미는 제 뱃속의 내장을 뽑아서 거미줄
을 만드는 거란다. 그 거미줄로 새끼들 집도 짓고 새끼들 먹
이도 잡는 거란다. 그렇게 새끼들 다 키우면 내장이란 내장
은 다 빠져나가고 거죽만 남는 것이지. 새끼들 다 떠나보낸
늙은 거미가 마지막 남은 한 올 내장을 꺼내 거미줄을 치고
있다면 아가, 그건 늙은 거미가 제 수의를 짓고 있는 거란다.
그건 늙은 거미가 제 자신을 위해 만드는 처음이자 마지막
거미줄이란다. 거미는 그렇게 살다 가는 거야. 할머니가 검
은 똥을 쌌던 그해 여름, 할머니는 늙은 거미처럼 제 거미줄
을 치고 있었지. 늙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 당신.
(생각과느낌 2005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