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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이기

비가 오는 날

by 여름B 2007. 3. 11.

  

 

  

 

  

 

                 비가 오는 날

           

            

          비가 오는 날

          아내에게 끌려 마트에 갔다.

           

          아내가 카트에 매달려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고 생활 속으로 떠난 뒤

          하늘과 가장 가까운 옥상 근처의 창가에 서서

          상념들이 유리창에 매달려

          바람을 뚫고 조금씩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타워크레인 아래

          덤프 트럭이 게으른 뒷걸음질을 하는데

          보도 블럭을 깔기 위해

          비를 맞는 인부들의 등이 무참히 굽어 있었다.

           

          칼날같은 스테인레스 가로등이 세워지고

          가로수들이 삼각발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는데 

          나는 황토 흙더미 아래 

          수확도 되기 전 무참히 생으로 묻혀버린

          벼 이삭들과 무와 시금치들의 비명을 생각했다.

           

          아내는 아직 단달마 비명이 남아 있는

          푸석거리는 동진미와 무와 시금치와

          아직도 눈이 시린 양파를 싣고 와

          다시 나를 지상으로 끌고 갈 것이다.

           

          창에는 악착같이 커져가던 눈물같은 상념들이

          바람에 휩쓸려 가는데....

           

           

                                                2007. 03. 10.     여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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