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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에 담기

울 동네 눈이 많이 왔습니다.

by 여름B 2005. 12. 17.

    눈이 많이 온다고 했으니 나가지 말라는 호랭이의 만류를 뿌리치고 아침을
    먹자마자 사진기 들고 오식도에 갔습니다. 신나게 달려가서 오로지 눈 덮인
    벌판에서 셔터를 눌러댈 일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식도는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나같이 승용차를 끌고 온 인간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덤프 트럭과 컨테이너를 실은 육중한 차들만
    듬성듬성 허허 벌판에서 엉금엉금 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미 상황 파악을 했었어야 했습니다만 머리가 닭대가리이다보니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작년처럼 또다시 눈길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믿는 것이 하나 있었지요. 뭐냐? 며칠 전에 장만한 체인입니다.
    디마트에서 산 스노우 체인!!! 그 넘을 너무너무 믿었습니다.
    여차즉하면 바퀴에 채우면 되지 뭘....
    하지만 자연의 위대함은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역시 눈길에 제 차는 멈추었고 기다렸다는 듯이 나는 체인을 꺼냈습니다.
    빠진 바퀴 주변을 맨손으로 파내어 겨우 체인을 채웠습니다.
    그리고 용감하게 악셀을 우악스럽게 밟아 눈길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뭐가 이상했습니다. 한쪽 바퀴가 이상합니다.
    내려서 봤지요.
    오매나!
    체인 하나가 어디로 가버렸습니다.
    눈은 계속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체인을 찾아보니 고물이 되어 바퀴 안쪽에
    칭칭 엉겨붙어 있었습니다.
    우라질, 디마트에서 샀는디 개판이구먼.
    이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사진이고 나발이고 눈이 쏟아지는데 멈칫거릴 수가 없습니다.
    엉긴 체인을 겨우 뜯어내고 마저 한쪽 체인도 풀어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전상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렇게 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시내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이 생각났습니다.
    가와바타는, 자신의 제자이며 20세기 일본 최고의 소설가로 칭송되는 미시마
    유키오가 할복하고 죽자 저도 덩달아 죽어버린 정신나간 골수 우익이라서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소설만큼은 감명깊게 읽었기에 지금도 이 닭대가리
    속에 오래도록 남아 기억하고 있습니다.
    바로 설국이 따로 없었습니다.
    운전하면서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여기 신호등에서 약간 오르막인데 미끄러지지 않을지 걱정

  신호등 무사히 건너고 주유소 앞. 눈이 더 쏟아지기 시작했다.

  얼마전 차가 고장났을 때 무조건 들어갔다가 돌팔이한테 바가지 쓴 카센타 앞

 

  저기 아파트에 무슨 로고가 보인다. 우리나라를 뒤흔드는 거대한 손!

 

내가 존경하던 국어선생님께서 근무하시던 학교 앞이다.

일본군 소좌였으며 나중에 군사 구테타로 정권을 잡은 박모!

그 추종자들에 의해 사상범으로 조작되어 곤욕을 치렀던 그 선생님!

그래서 지금도 나는 그 더러운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그 뒤를 이은 두 쓰레기들과 함께.

 

 

  곳곳에 체인을 채우느라 고생들이다. 아마 이번 눈사태에 체인 많이 팔렸을 거다

 

 

 

 

  여기도 체인을 채우고 있다.

 

 

 

 

  눈보라가 친다

  앞이 잘 안 보일 지경이다.

  친구네 병원 앞이다.
고등학교 때 짝궁이었는데 그는 쉬는 시간에 놀지 않고 공부를 했고

나는 놀기만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눈오는 날 사진 찍으러 돌아 다니고

그 넘은 청진기 귀에 걸고 앉아서 아직도 돈 벌고 있다. 재작년에 그 동안 번 돈을 모아
이 빌딩을 올렸는데 동창회 모임 때 술값을 치르면서 가격이 꽤 올랐다고 가끔 자랑한다.
나는 빌딩 사진이 잘 나왔다고 자랑을 한다.

신호등 앞인데 눈이 와서 몇 번째 신호를 기다렸다. 창문쪽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으니

지나가는 운전자들이 안 좋은 눈빛을 보낸다.

내 맘인디~~

 

 

 

 

  내가 사는 아파트로 들어왔다.

 

 

 

  며칠 눈을 치우지 않은 차량이다.

  우리 통로 입구다.

  들어와 내 신발을 찍는데 호랭이가 잔소리를 한다.

돈이 나오요?
그 입도 찍어서 올려 볼까?

  아파트 주차장을 내려다 보았다.

 

문제의 체인이다. 오른쪽이 정상이고 왼쪽 것이 말썽을 일으킨 것이다.
저 왼쪽 넘만 아니었으면 아직도 오식도를 돌아댕기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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