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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온 시

머리 위에 모란꽃, 모란꽃 위 붉은 볏의 닭

by 여름B 2020. 9. 25.

머리 위에 모란꽃, 모란꽃 위 붉은 볏의 닭/김밝은

 

 

사람만 좋지 사업수완이라고는 젬병인 사람의 운수도
집안에 빵빵한 몸을 가진 암탉을 놓아두면
퐁퐁, 金을 잘 낳을 거라 했는데

신성한 의식처럼 바라보던 암탉의 엉덩이가
아무 데도 쓸모없는 장식품으로 전락해가고
칙칙한 이야기만 졸음처럼 몰려드는지
살을 꼬집어도 스르르 내려앉는 오후 두 시의 눈꺼풀

머리 위에 모란꽃을 얹고 있었던 건 상상이었을까

신의 수작에만 뜨거워지는 몸을
두꺼운 깃털 속에 숨기고 있는 건지
닭의 아랫도리를 만지작거리던 손만
붉어지고 싶어 안간힘이다

꼬ㅡ꼿ㅡ해ㅡ,
꼬ㅡ꼭...
우아한 척 토해내는 한숨 소리만 커져간다


* 김경란 화가의 그림을 보고

 

⸺시집『자작나무숲에는 우리가 모르는 문이 있다』(2020년 9월)

 

 

김밝은 / 전남 해남 출생. 2013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술의 미학』『자작나무숲에는 우리가 모르는 문이 있다』

 

김밝은 시인의 두번째 시집 『자작나무숲에는 우리가 모르는 문이 있다』를 어제 보내주셔서 감사하게 접하고서 두어 편만을 읽다 접어두고 오늘 새벽에야 일어나 일독을 했다.

갑자기 김시인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듯한 시가 눈에 들어온다.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김시인은 에로티스트에 기울어지는 작가는 분명 아니다. 시의 제재에 어찌 영역을 한정지을 수 있겠냐마는 어쩌면 영역의 울타리를 넓힌 것으로 보아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축복을 해 주어야 할 일이다. 

 

가끔

//

신도 외로우신 걸까

//

간밤

//

자위행위를 했는지

//

몸부림친 흔적으로 세상 어지럽다

 

동 시집 2부에 실린 <폭설후>에서는 거의 원색적이다. 하얀 눈을 정액으로 표현하다니.

그렇다면 훌쩍 읽어버린 <자작나무 숲에는 우리가 모르는 문이 있다>의 시도 다시 되읽어 보고 싶어진다. 왜냐하면 자작나무도 하얀색이니까.

 

김밝은 시인의 제2시집 발간을 축하드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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