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이 피었습니다/김성희
봄빛의 과부하로 목련이 피었습니다
닥종이 같은 흰 꽃잎이
햇살에 도타워지면
가슴 저릿하게 피어나는 얼굴
문득,
어머니는 웃음이 많았던가
그 웃음을 어디에 간직해 두었던가
광목처럼 뻣뻣한 삶을 다듬이질하고 남은
풀죽같이 힘없는 미소가
삶 어디를 붙들고 있었던가
무심코 웃음은 희다, 라고 중얼거리니
금세 사방이 어두워집니다
목련이 피면 잠시 웃었을 어머니
봄이면 웃음을 탕진하려는 상춘객을 따라
단술 항아리 머리에 이고 팔러 가는 뒷모습이
그 봄의 목련 같았던
목련이 아무리 피어도 당신은 보이지 않아
나는 봄이면 종종 당신을 앓습니다
김성희 시인님이 첫 시집을 보내주다.
고마운 마음과 함께 그분의 어머님에 대한 애트함이 묻어나는 구절들에 마음이 울컥하다.
시인의 어머님은 흰 옷을 즐겨 입으셨을까?
닥종이같은, 광목같은, 풀죽같은 빛바랜 흰색을...
머리에 한 가족의 생계를 이고 사시다 가셨더라면
목련이 아니더라도 여름의 녹음이거나 붉은 단풍속이거나 관계없이
눈이 짓무르도록 계절마다 앓는 이 적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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