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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온 시

물속 엘리스/김루

by 여름B 2020. 4. 28.







물속 엘리스/김루


태양이 지고
바다가 잠들면
우리는 양초로 밤을 밝힙니다

물의 정령을 위해
기도하는 아이들을 위해
아래로  더 아래로
물길을 열면
순록은 어디로 헤엄쳐 갈까요

바람을 볼 수 없어
양초는 뜨거워져 가는데
기도할수록 맨발입니다

아이는 어느 초원클럽에서 풀을 뜯고 있을까요
그림자는 내 곁인데 아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루 한 달 십 년
툰드라에서 시베리아로
달빛을 건너간 순록의 밤은 치마였을까요
치마 입은 밤이 달빛을 건너갑니다

나뭇잎 한 장으로
그림자의 전생을 다 가릴 순 없지만
주름을 펼치는
물속 고요는 낮습니다
 
 
2010년  <현대시학> 신인상
<문학과 사람> 2020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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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운산 인터체인지를 나와 복분자로를 따라가다 미당시문학관으로 넘어가는 질마재길과 만나는 곳에 있는
조그마한 오산저수지를 20여 년 전쯤 과학캠프가 끝나는 둘째아들을 데리러 갔다가 시간이 남아 잠시 둘러보는데
방생의 선물로 뿌려진 작은 냄비 뚜껑 만하던 붉은귀거북이가 다리 아래서 햇빛에 체온을 축적하던 시간을 방해하자
풍덩소리로 사라지던 날이 있은 그 다음부터 그 길을 지날 때마다 다리 위에서 물속을 들여다 보곤 하던 것이
아마 수 년 간 계속되었는데 그것도 까무룩 잊어버리고 있다가 문득 생각이 떠올라 허우적 찾아가 보니
거북이는 보이지 않고 채석장을 오가는 덤프트럭들이 일으키는 먼지 속에 산벚꽂들만이 듬성듬성 피어 있고
어디서 날라와 피었는지 시들어가는 벚꽃 속에 유채꽃이 더욱 노랗더라.
엘리스는 끝내 만나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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