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제 /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러히 잦아지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설어운 설흔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산수유' 하면 난 바로 이 시가 떠오른다.
산수유나무의 꽃과 열매는 차치하고 나무조차 한번도 본 적이 없었을 때인데 나는 이 시를 만나 빠지고 말았다.
그때부터 막연히 붉은 열매만 보면 저게 산수유일까 하는 의문을 꼭 갖곤했으니까.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의 매개물인 산수유 나무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성인이 되고나서도 한참 뒤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서 였으니
늦어도 어지간히 늦게 안 셈이다.
오늘은 일찌감치 구례를 다녀왔다.
물론 마스크는 꼭 쓰고 다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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