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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에 담기

여섯 그루의 포플러나무가 있는 풍경

by 여름B 2020. 2. 15.







  어렸을 적 우리 집엔 포플러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봄이 되면 송충이들이 득실득실한 속에서도 꿋꿋이 자랐고 여름이면 폭풍 속에 사시나무가 되어 마당 한 가득 잎들을 뿌려 놓았다.

가을의 단풍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나 보다. 기억의 자루 속을 들여다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동네 멀리서도 보이는 이 나무는

우리 가족이 지금 어디를 다녀 오나 살피 듯 미어캣처럼  마당 가에서 종일 손그늘하고 서 있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냥공장 트럭이

와서 도막을 내어 실어가고 말았다. 나무가 너무 자라 만약 쓰러지기라도 하면 위험하다고 하는 아버지의 판단에 우리집의 파수꾼 미어캣이

한낱 목재로 변해 쌀표 성냥통으로 들어가 버리는 슬픈 날이었다.    

 작년 터키여행 중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이 나무를 만났다 . 은행나무처럼 노랗게 물들어 있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다른 나무들도 단풍이 들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군계일학처럼 선명히 노란 자신의 모습을 꼿꼿하게 세워 보여 주고 있었다. 이것이

포플러의 매력이다.

  한 때 가로수로 많이 심었던 이 나무들이 은행나무나 단풍나무에 밀려 우리의 거리에서 사라졌다. 지금도 여행 중이나 교외에

나갈 때면 멀리 서 있는 이 나무를 가끔씩 만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어렸을 적 마당가의 포플러 생각이 잠깐씩 나를 사로잡아 한 동안

미어캣처럼 망연히 서 있게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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