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 조두섭
푸른 항아리
누가 어둠속에 깨트리고 있다
벌겋게 달아오른 가마 속 익은 황토가
이슬방울을 폭우 뿜어내도록
불꽃의 혀가 빠져나오도록
제 육신에 촘촘하게 박힌
수천만의 푸른 별이
화들짝 놀라 비명을 내지른다
그것이 절망이 아니라 고통이라면
달빛 사금파리야말로
고통의 정점에서 피어나는
황홀한 꽃잎 꽃잎들
향기마저 산산조각 깨트려버리는
첫새벽 허공은 누가 제 영혼
갈증의 가마에서 구워낸 푸른 항아리다
비워서, 또 비워서 어둠마저 차오르는
눈부신 항아리
남쪽바다 검은 소나기 몰려와 닦고
가는 빈 항아리
한 생애 얼마나 깊고 넒어야
거기 분홍으로 가득할까
- 조두섭 시집 『망치로 고요를 펴다』 (만인사, 2004)에서
1978년 <매일신문>,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1979년 《시와시학》 신인상 당선
시집으로 『눈물이 강물보다 깊어 건너지 못하고』
『망치로 고요를 펴다』 등
노랑상사화를 보러 갔는데 비에 젖고 이미 고개 숙인 녀석들을 마주 볼 수 없었다.
경내를 둘러 보고 배롱나무꽃 마지막을 담는다.
굴러 떨어진 동백꽃씨에서 몇 개의 알맹이도 고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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