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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배롱나무

by 여름B 2019. 9. 10.
















배롱나무 / 조두섭

   

 

                  푸른 항아리

누가 어둠속에 깨트리고 있다

벌겋게 달아오른 가마 속 익은 황토가

이슬방울을 폭우 뿜어내도록

불꽃의 혀가 빠져나오도록

제 육신에 촘촘하게 박힌

수천만의 푸른 별이

화들짝 놀라 비명을 내지른다

그것이 절망이 아니라 고통이라면

달빛 사금파리야말로

고통의 정점에서 피어나는

황홀한 꽃잎 꽃잎들

향기마저 산산조각 깨트려버리는

첫새벽 허공은 누가 제 영혼

갈증의 가마에서 구워낸 푸른 항아리다

비워서, 또 비워서 어둠마저 차오르는

눈부신 항아리

남쪽바다 검은 소나기 몰려와 닦고

가는 빈 항아리

한 생애 얼마나 깊고 넒어야

거기 분홍으로 가득할까

 


- 조두섭 시집 망치로 고요를 펴다(만인사, 2004)에서

 

 12090.jpg

1978<매일신문>, 1979<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1979시와시학신인상 당선



시집으로 눈물이 강물보다 깊어 건너지 못하고

망치로 고요를 펴다



노랑상사화를 보러 갔는데 비에 젖고 이미 고개 숙인 녀석들을 마주 볼 수 없었다.

경내를 둘러 보고 배롱나무꽃 마지막을 담는다.

굴러 떨어진 동백꽃씨에서 몇 개의 알맹이도 고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