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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가족

아들의 부도

by 여름B 2008. 9. 3.

 
      요즘 군대는 참 편리해졌습니다. PX(군대 매점, 여성분들을 위한 배려임)를 이용할 때 용돈과 월급을 통장에 예치를 해 두고 카드로 지불을 한다는군요. 그래서 아들이 카드로 지불을 하는데 그 내역이 제게 문자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가끔 문자가 옵니다. 회식이라도 있으면 7-8천 원이 나갈 때도 있고 작게는 천여 원이 나갈 때도 있습니다. 나는 아들의 지출 내역을 알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쾌재를 불렀는데 몇 달이 지나니 이제는 그것도 귀찮더군요. 일병으로 진급하고 휴가를 다녀간 지 몇 주가 지나다 보니 그동안 큰아들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모처럼 밖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문자가 왔습니다. 큰아들의 지출 문자였습니다. '아, 내게 또 하나의 아들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아랫도리가 뿌듯해지기도 전에 문자 내용을 보고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1500원을 지출하려는데 거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아마 저녁을 먹고 좋아하는 닭꼬치 하나 더 먹으려 했던 모양입니다. 즈가부지는 백수가 되어 벌건 대낮에도 어스렁거리고 돌아니는데 아들녀석마저 살림이 거덜나 1500원짜리 닭꼬치 하나를 사 먹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에 대해 아비로서의 비애가 페이처럼 밀려왔습니다.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밖으로 나와 호랭이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호랭이는 간단히 한 마디로 답하고 끊습니다. "내사 둬." 백수인 저보다 우선 당장 군대간 아들에게 닭꼬치가 필요합니다. 닭꼬치 하나 때문에 우리의 국방전선에 이상이 생기면 얼마나 큰 손해입니까? 도와 주실 분은 아래 계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보내주시라는 말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참고 사항입니다. 농협 123456-7891011-12131415 입니다. 앵벌이가 따로없다거나, 여름이 다 가니 여름비 정신이 오락가락하나보다 등의 댓글을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슬픈 음악이 듣고 싶다. 2008. 09. 03 여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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