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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가족

첫 휴가 온 아들

by 여름B 2008. 7. 6.

    지난 2월에 입대한 울 큰아들은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장갑병으로
    차출되어 광주 기갑부대를 거쳐 현재 경기도 모처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런데 장갑병으로 뽑힌 자들은 신체 조건이 거의 완벽해야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거기에 선택된 것을 보면서 아랫도리의 뿌듯함과 함께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모든 농사가 그렇듯이 종자가 좋아야 우량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둘째, 종자가 완벽하면 밭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셋째, 술을 많이 먹고 작업하면 음주 능력도 잘 갖추게 할 수 있다. 큰아들. 지난 금요일부터 4박5일 휴가를 나와 밤에는 친구들과 술에 절어 살고 낮에는
    저쪽 방에서 컴퓨터에 매달려 열심히 작업하며 휴가병으로서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그런데 큰아들이 휴가 나오던 금요일. 나는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바람을 신나게 피다가 늦게 들어왔는데, 우리
    아들은 아버지한테 신고를 해야 한다면서 옷도 벗지 않고 바람난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쎄 빠지게 기다렸단다. 바람 피는 중간에 ‘모든 것을 용서해 줄 테니 빨리 귀가하라’ 는 호랭이의 독촉 전화가 여러 번 왔지만, ‘신고는 나중에 받을 테니 술이나 진탕 먹고 오라 전하라’ 고 소리를 질렀다. 호랭이는 그때마다 어흥거리며 끊었고 아들의 휴가
    신고는 머쓱하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새벽에 술에 곤드레만드레가 된 아들이 들어왔다. 나는 전 날의 잘못도 있고 해서 팬티 바람으로 일어나 얼른 거실로 나가
    아들을 껴안았다. 그러면서 감격어린 목소리로 ‘장하다 내 아들’ 해 줬다. 그리고 얼른 지갑을 꺼내 수표 한 장 건네 주면서 ‘오늘도 술을 먹고 오라’ 고 했다. 그랬더니 감격에 겨워서 ‘고참들이 갈굴 때 아빠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참고 견뎠어요.’ 하면서 울려고 한다. 그 말에 나는 더욱 감격해서 지갑을 또 열었지만,
    나도 작업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라 슬그머니 참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군인들 휴가가 없으면 안 될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현관에서 아들이 소리친다. ‘아빠 빨리 나오세요. 냉면이 얼마나 간다고 그렇게 뜸들이세요?’ 오늘 저녁은 냉면입니다.
                      호랭이가 큰아들 훈련소 사진을 액자에 넣어 놨습니다.
                      ♬배경음악:Old And Wise /Alan Pars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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