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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온 시

낯선 편지 /나희덕

by 여름B 2005. 9. 23.

      낯선 편지 오래된 짐꾸러미에서 나온 네 빛바랜 편지를 나는 도무지 읽어낼 수가 없다 열정이 사라진 자리에 건포도처럼 박힌 낯선 기호들, 그 속삭임을 어둠 속에서도 소리내어 읽곤 했던 날들, 그러나 어두운 저편에서 네가 부싯돌을 켜대고 있다 한들 나는 이제 눈 멀어 그 깜박임을 알아볼 수가 없다 마른 포도나무 가지처럼 내 가슴에는 더 이상 너의 피가 돌지 않고 네게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온몸이 눈이거나 온몸이 귀가 되어도 가 닿을 수 없는 빛과 소리의 길을 오래된 짐꾸러미 속에 네 편지를 다시 접어 넣다가 나는 듣고 말았다 검은 포도알들이 굴러 떨어지는 소리를 -나희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