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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 대보름 즈음의 추억과 진도 남도진성

by 여름B 2023. 2. 12.

얼마 전 대보름을 보냈다. 
 
보름날 이틀 전에 아내는 보름장을 봐야 된다고 로컬푸드로, 대형 마트로, 장터시장으로

한기사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부려 먹었다. 보름 하루 전 찰밥과 구운 생선과 나물 반찬

몇 가지를 싸 주면서 어머니댁에 가져다 드리라는 명령도 내렸다. 
 
어머니는 경로당에 계셨다. 막상 어머니한테 찰밥 가져왔노라고 말씀드리니

오지랖도 넓으신 당신께서는 이것은 경로당에서 나눠먹어야 된다며 바구니째

가져오라 하셨다. 그렇게 며느리의 정성을 깡그리 뭉개버리셨는데 한참 뒤

경로당에서 한과만 덜어내고 어머니집으로 바구니를 도로 가져 오셨다.
'며느리가 시어머니 드리려 장만한 것을 우리들이 먹을 수 없다' 하시면서....
 
나 어릴 때는 대보름날 뿐만이 아니라 겨울 내내 들판에서는 불놀이가 벌어진다. 
 
우리 동네에서 제법 산다는 영숙이네집이나 상수네집에서 나오는 생선 통조림 깡통은

늘 먼저 차지하고자 하는 경쟁물이었다. 그 깡통에는 등 푸른 생선인 꽁치가 그려져 있었다.

우리들은 그 깡통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며칠씩의 기다림도 넉넉히 감수하였다. 
 
그 깡통을 주워다가 못을 사용하여 옆구리 아래쪽으로 쭉  수십 개의 구멍을 뚫고

위쪽으로 두 군데 구멍을 내 철사줄을 달았다. 그것이 우리 불놀이 기구였다.

그 깡통에 작은 나무며 헌고무신 조각 등을 넣고 불을 붙여 공중에 돌리면 불이 활활 타올랐다.

속도를 빨리하여 돌리면 '확확'하는 불소리는 더욱 커졌고 그 열기는 얼굴로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이미 꽁치 그림은 타서 자취도 없어지고 붉은 불덩이가 허공에 원을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망우리야"
우리는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초저녁 달이 떠오를 때를 기다렸다.
그 말은 망월(望月)이나 만월(滿月)이란 말이 아니었을까. 
 
지금도 시골에서 소년들이 그런 놀이를 하고 놀까?
그런 놀이를 알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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