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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온 시

김수영의 시 하나

by 여름B 2021. 11. 22.
풀​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이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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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이 죽기 20일 전에 쓴 마지막 작품
ㅡㅡㅡㅡㅡㅡㅡ 
 
풀은 풀이어야 한다.
뿌리까지 누웠다가 다시 일어서서 웃는
항상 바람에 맞서는 풀이 진정 풀답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김수영은 문인들 사이에서 지독한 노랭이라고 했다.
다른 문인들과 달리 원고료를 받으면 관례처럼 술이나 밥을 동료들에 사지 않고 집으로 온통 가져가기 때문이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인민군을 탈출해서 집으로 왔는데 곧바로 잡혀 친공 반공 포로들이 피를 튀기는 거제 수용소에서 악몽같은 2년을 보냈다. 그 사이 아내는 다른 남자에게 가 버렸다.
훗날 돌아와 다시 살게 되지만. . .
ㅡㅡㅡㅡㅡㅡㅡ 
 
김수영은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아내 김현경을 거리에서 우산대로 팼고 그것을 시로 썼다. 사람들이 보고 있었던 것에 대한 창피함과 우산을 두고 온 것에 대한 후회가 드러나 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술을 마시고 귀가하다 버스에 치었다.
깨어나지 못하고 1968년 6월 16일 46세로 생을 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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