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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온 시

모감주나무/김성희

by 여름B 2021. 8. 30.

내 사진을 찾지 못해 꿀벌아산대전65님의 사진을 빌려옴.

김시인의 모감주나무 시를 읽는데 모감주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아 이것저것 잡다한 일을 하면서

한나절을 보내고서야 겨우 오식도 공단공원을 떠올렸다.

     

공원을 온통이다시피 전경을 노랗게 물들인 주인공이 무엇일까

궁금해 하는 찰나에 일찍 떨어진 무른 감을 물컥 밟으면서 섞어 심은

감나무의 낙과에 신경이 쓰여 검색하는 것을 잠시 잊었던 몇 년 전이 겨우 떠올랐다.     

 

이어서 입구쪽에 주차해 놓은 트럭 창문에 기대어 잠든 중년의 운전수가 떠올랐고

예초기로 잡초를 제거하던 젊은 인부가 땀을 훔치던 하얀 수건도 연달아 떠올랐다.

바랜 페인트 색깔에 검은 곰팡이가 잔뜩 엉겨붙은 벤치는 오직 공원이라는

명칭을 갖다 붙이기 위한 장식에 불과했던 여름날이었다.     

 

오래된 사람 떠올리는 것도 깊은 우물에서 두레박을 퍼올리는 것처럼

한참의 시간을 두고 생각을 해야한다. 걸음걸이나 목소리는 생각난다.

자주 만나던 장소도 만화경 장면 넘어가듯 이어지고 안타까워하는 눈빛까지도 떠오르는데

이름이 쉽게 생각나지 않는 때가 있다.

이럴 땐 비록 오래 전의 인연일망정 미안한 생각이 안개처럼 밀려온다.

~~~~~~~~~~~~~~   

 

 

모감주나무/김성희     

 

 

축축한 잠에서 깨어나면 아름다운 너는 없다 

 

늦은 저녁을 짓느라고

된장을 풀고 매운 고추를 썰고

도마를 탕탕 두들겨 마늘을 찧으면

눈물을 믿지 않는 나이에 얼마쯤 울 수 있는

알싸한 재료들이다   

 

예스런 생각과 방금 돋아난 생각을 버무린 저녁

소화되지 않을 결핍에

처방전 없는 구름무늬 알약을 삼킨다   

 

이제 달을 보는 일이나 별을 헤아리는 일보다

삼가 알약을 삼키는 일이 더 경건해진지 오래 

열길 물속보다 한 길 사람 속에서 곡진한 캡슐이 내가

믿는 신이다   

 

풍어제가 시작된 어느 바닷가

그때 풍파를 달래는 주술같이

거친 바다 위에 오방색 같은 모감주꽃   

 

간헐적 두통에도 가팔라지는 불안

꽃잎을 빚은 듯 세세한 빛깔의 알약들에

파도치는 나를 주술처럼 달랜다     

 

 

시집 「나는 자주 위험했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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