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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이기

참취향에 취하다

by 여름B 2020. 5. 8.

 

 

 

 

 

 

 

 

 

 

 

  비소식이 들려와 농장에 들러 그동안 미처 파종하지 못했던 더덕, 도라지, 고수를 군데군데 뿌렸다.
베란다 박스 안 비닐봉투에서 몇 달을 숨죽이다 봄바람에 일찌감치 기지개를 켜고 박스를 벗어나길
손꼽아 기다렸을 씨앗들에게 늑장만 부리는 내 모습이 무얼로 비춰졌을까. 
 
 대나무가 쓰러지면서 엄나무들이 많이 다쳤다. 채취 시기도 늦었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순을 뜯다 보니 한 주먹은 된다. 내년엔 채취시기를 놓치지 말아야겠다. 며칠 사이에 참취도 많이 자랐다.
대나무 그늘이 사라진 게 원인일까. 작년보다 개체수가 좀 줄어든 느낌이다. 그래도 무더기진 곳들이
보이고 한 식구가 맛보기 정도는 되는 것으로 만족의 웃음도 지어 본다. 무성한 곳에서는 줄기 채 뜯었다.
손톱 끝에서 번지기 시작한 취향내가 코끝을 지나 사방에 퍼진다.
은은한 참취향. 
 
이 좋은 향내를 고라니나 토끼같은 야생동물들이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무척 궁금하다. 전부터
자라고 있던  들깨도 손을 대지 않는다. 진한 향내를 풍기는 식물들은 야생동물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작년에 모종을 했던 딸기는 순이 번지기도 전에 대부분 야생동물들의
간밤 간식거리로 사라졌었다. 인상좋은 종묘사 사장은 내가 개간한 산에 심을거라 하니 허허 웃었다.
아마 하찮은 경작거리라도 경험을 통해 공부하라는 무언의 충고였나 보다. 그 덕분에 한 수 배웠다. 
 
 오전 2시부터 비가 내린다 했는데 베란다에서 문을 열고 팔을 내밀어도 비는 느껴지지 않는다.
새벽 3시 15분의 아파트는 정적이다. 
 
 취에 물든 손톱 끝을 코에 대 본다. 이미 비누에 씻겨나가 취향이 남아 있지는 않겠지만
그 향은 은근히 느껴지는 듯하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은은함이 내게도 있어
누군에게든지 따스함이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기를 희망하는 밤이다. 
 
                                                                                                     - 5월 3일 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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