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가 있는 풍경/박숙경
봄 햇살과 살바람 사이로
밧줄 하나 흔들린다
사내가 좌우로 아래로 발을 옮길 때마다
꼬리조팝 가지도 덩달아 요동친다
밧줄의 매듭법이 그의 목숨줄
비둘기 몇 마리 허공을 가르면
사내의 눈빛마저 흔들린다
가끔은 매듭을 풀어 낮달에 걸어놓고
숨겨둔 날개를 꺼내 날아보고 싶으리라
살아온 날들만큼 매달았을 그 외줄에
나머지 생을 다 걸었으리라
저리도 아찔하게 피었다 지는 게 삶이라고
이울 일만 남겨둔 화단의 백매화가
위로의 미소를 한참이나 올려 보내는 중이다
그 풍경을 내가 읽는다, 물끄러미
양쪽 마천루 끝에 줄 하나 걸쳐 놓고 건너던 사내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오직 긴 철봉대 하나로 중심을 잡으며 한발한발 내딛던 사내
그에게 안정장치란 비굴함이며 치욕이었다.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갑자기 중심을 잃은 사내
줄 위에서 잠시 주춤거린다고 느끼는 순간 수백 미터 허공에서 그가 사라진다.
아무렇지도 않게 양쪽 마천루 끝에는 쇠줄 하나 흔들리고
매화가 이렇게 피었더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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