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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온 시

술의 미학 외 1/김밝은

by 여름B 2017. 8. 1.










술의 미학

 

                             김밝은

 

 

 

가끔 심장이 시큰둥해지는 날

 

곱게 부순 달빛가루에 달콤한 유혹의 혀를 잘 섞은

목신 판의 술잔을 받는다

 

찰나의 눈빛에 취해 비밀의 말들을 너무 많이 마셨나

날을 세운 은빛 시선이 애꿎은 꽃잎만 잘라내고 있다

 

물구나무서던 시간들이

절룩거리는 기억을 붙잡고 일어서고

살 속에 섞인 위험한 말들 잠들지 못해

서로 흔들리고, 깨어지기도 하면

 

옆구리를 내어주며 쨍쨍 부딪치던 건배의 얼굴이

늑골 어딘가에 콕콕 박혀 가쁜 숨을 몰아쉰다

 

끝내 토해내지 못해

상처 난 이름으로 가슴 울렁거리고

 

손가락만 흔들어도

열꽃처럼 번져가는 뜨거운 노래들로

바람 속 영혼들처럼 마음 흩날리는 날*

 

사랑이 사랑으로도 치유되지 않아

벌거벗은 혀들이

 

술잔 속에서 팔딱거리고 있다

 

  * 인디언 달력에서 1월을 뜻하는 말 중 "바람 속 영혼들처럼 눈이 흩날리는 달'에서 따옴.


 

    자작나무 숲에 내리는

 

 

 

아릿하고 매운 하늘을 머리에 인

길이 멀미를 하듯 지나갑니다

 

직립의 시간 속

누구 하나 말 걸어오지 않는 날

 

몸은 늘 가로로 누우려 하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흰 바람만 푹푹 쏟아집니다

 

허공으로 길을 내던 고광나무 곁을 지나

천지간 뭉클한 그대의 집,

가는 길은 멀어서

 

겨울을 걸어가는 홍방울새의

눈 속에 숨겨두었던

오래된 말들이 등을 보이며 떠나갑니다

 

풍화되어가는 약속의 전언

나는 일찍이 입어본 일이 없는 납의 무게를 입*고도

 

아직

그대를 기다립니다

 

 

* T.로스케의 시「지금은 무엇」중에서.   

 

 

                       —시집『술의 미학』(2017. 7)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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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밝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육과 졸업.  2013년 《미네르바》로 등단. 

현재 《미네르바》편집위원, 《월간문학》편집국장. 시집 『술의 미학』.



발목 연골 수술한 지 딱 12일

책상에 앉으면 발이 부어 올라 어쩔 수 없이

거실에 노트북 가져다가 소일한 지도 10여 일이다.

어제 이삐 김밝은님의 시집를 받다.

감사한 마음으로 몇 점 우선 간을 보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우문이지만 역시 중요한 답이 하나 있다.

사랑.

사랑에 빠져 보지 않은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사랑을 해 본 사람은 안다.

기쁨과 달콤함과 그 짜릿함.

그리고 기다림이 무엇이며 아픔은 어디에서 오는지를.

어떤 이는 사랑의 아픔을 술로 달래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기다림을 굴레를 스스로 둘러 쓰기도 한다.

사랑을 세상의 전부로 여겨 상사의 병에 갇히기도 하고

심지어는 끝내 종말의 종을 울리기도 한다


복날도 잊고 지낸 7월을 보내고

8월이 첫날에 김시인님의 사랑을 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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