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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에 담기

거미줄을 치다

by 여름B 2008. 8. 24.

 

    며칠 전 외출을 하기 위해 자동차 문을 열었다. 백수라고 해서 특별히 오라는 곳은 없지만 그래도 갈 곳이 꽤 있다는 것을 경험하신 분들은 잘 알 것이다. 자리에 앉아 시동을 켜려는데 문득 눈앞에 보이는 게 있었다. 거미줄이었다. 여름이라서 창문을 약간씩 열어 두는데 밤사이 그 틈으로 거미가 들어와 거미줄을 쳐 놓았나 보다. 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차 문을 여는 동안 어디로 숨었는지 아니면 집만 지어 놓고 밖으로 잠시 나들이를 갔을지도 모른다. 손으로 거미줄을 걷어 내고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어제 아침 다시 차문을 열고 들어가니 또 다시 거미줄이 쳐 있고 작은 거미 한 마리가 거미집 중앙에 당당히 자리 잡고 버티고 있었다. 며칠 전에 거미줄을 쳐 놓고 사라졌던 그 거미가 아마 밖으로 나가지 않고 차 안 외진 곳에서 머물다 다시 이렇게 집을 지었음에 틀림없다. 나는 저 작은 거미가 힘들게 지었을 거미줄을 걷어 낼 생각도 없이 잠시 운전석에 앉아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거미는 내가 바라보고 있는 줄도 모르는지 미동도 없다. 저 좁쌀만한 작은 거미는 손가락 하나 정도 들락거릴만한 그 틈으로 어렵게 들어와 아무런 먹이도 잡힐 가능성이 없는 차 안에서 그래도 먹고 살기 위해 밤새 집을 지어 놓고 먹이를 기다렸을 것이다. 자동차 불빛이 가끔씩 번쩍거리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얼마나 무서운 밤을 보냈을까? 방향제 나는 차 안에서 주린 배를 붙잡고 밤새 무슨 생각을
    했을까? 며칠 전 집을 송두리 채 걷어채인 황당함에 또한 얼마나 놀랐을까? 시동을 걸기 전에 나는 거미집과 거미를 종이로 슬며시 걷어냈다. 그리고
    갑자기 놀라서 종종걸음 치는 거미를 화단으로 무사히 옮겨 놓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말했다. 굳세게 잘 살아야 한다, 거미야! 그리고 여름비야!
      늙은 거미 /박제영 늙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 당신, 늙은 거문개똥거미가 마른 항문으로 거미줄을 뽑아내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당신, 늙은 암컷 거문개똥거미가 제 마지막 거미줄 위에 맺힌 이슬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당신, 죽은 할머니가 그러셨지. 아가, 거미는 제 뱃속의 내장을 뽑아서 거미줄을 만드는 거란다. 그 거미줄로 새끼들 집도 짓고 새끼들 먹이도 잡는 거란다. 그렇게 새끼들 다 키우면 내장이란 내장은 다 빠져나가고 거죽만 남는 것이지. 새끼들 다 떠나보낸 늙은 거미가 마지막 남은 한 올 내장을 꺼내 거미줄을 치고 있다면 아가, 그건 늙은 거미가 제 수의를 짓고 있는 거란다. 그건 늙은 거미가 제 자신을 위해 만드는 처음이자 마지막 거미줄이란다. 거미는 그렇게 살다 가는 거야. 할머니가 검은 똥을 쌌던 그해 여름, 할머니는 늙은 거미처럼 제 거미줄을 치고 있었지. 늙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 당신. 얼마 간 집에서 놀다 보니 여름비 입에 거미줄을 치게 생겼다. 추석도 쇠고, 늙은 거미 같은 호랭이와 먹고 살려면 내일부터라도
      어디 일자리를 알아 봐야쥐~~~ 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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