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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온 시

늙은 매미 / 이나명

by 여름B 2008. 8. 16.

  

 

      늙은 매미 /이나명 양 날개는 양 옆구리에 엉성히 붙이고 앞의 네 발은 허공에 띄운 채 두 뒷발로만 겨우 문턱을 붙잡고 있는 세상에서 떨어져 내리기 직전의 너를 본다 우매한 내가 어찌해 보고자 유리창을 탕탕 두드리며 너를 깨우려 한다 네 앞발들이 조금 움직여 허공을 잠시 바득바득 긁는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허공은 아무 소리도 들려주지 않는다 유리창 밖의 세계와 유리창 안의 세계가 눈이 딱 맞아 떨어진 이 시간에 죽음은 아주 가까이서 잠깐 숨을 죽이고 나를 들여다보고는 휙 사라졌다 아무 자취도 없는 내 안의 허공 중에서 누군가의 발가락질이 가물가물 느껴진다
      ♬ ~ ~ ♬ 며칠 전 화단 옆 아스팔트에 크기나 색깔로 보아 말매미인 듯한 매미 한 마리가 힘들게 기어 가고 있었다. 아마 수명이 다했나 보다 싶어 편안한 안식처로 옮겨 줄 생각에 화단의 흙에 올려놓기로 했다. 내 손에 들려진 매미, 아직도 끊기지 않은 모진 생명력과 껍질의 단단함, 그리고 왕매미란 별명처럼 육중한 크기가 손가락 전체에 느껴졌다. 손 안에서 힘들게 발을 휘젓고 있는 말매미. 긴긴 날들을 어둠 속에 웅크리고 지내다 겨우 세상을 나선지 몇 날일 터인데 이 밝은 세상의 여행길을 얼마나 큰 기쁨으로 노래를 불렀을까? 그때 갑자기 힘찬 몸부림이 손끝에서 느껴지는가 싶더니 그 매미는 내게 놀랄 사이도 주지 않고 어느 방향이랄 것도 없이 삽시간에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고, 엉거주춤한 내 손은 팔월의 태양만 내리받고 있었다. 2008. 08. 16. 여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