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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이

만남의 부도

by 여름B 2008. 8. 11.

 

 

      언제 다시 보자는 말 / 곽효환 둔촌시장 어귀에서 오래 전 친구를 기다린다 결혼은 했겠지 그 때 그 여자일까 아이는, 부모님은, 직장은…… 세꼬시 횟집에서 마주 앉은 그의 모습에서 이십 년을 건너 뛴 내 나이를 읽는다 성근 머리칼, 볼록 나온 아랫배, 왜소해 보이는 팔과 다리 아내는 전에 그녀가 아니라고 했고 아이는 둘이고 모두 초등학교에 다닌다고 했고 내내 공부만 하다 지금은 아버지 사업을 돕는다고 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안부를 묻고 술잔을 주고 받고 이야깃거리가 마를 무렵 자리를 옮겼다 다시 한참을 기억할 수 없는 수많은 잡담 그리고 언제 다시 보자고 기일 없는 약속을 남기고 발길을 돌린다 높낮이가 평평하기만 하던 일자산(一字山)이 집으로 가려면 이리로 오라고 부른다 문득 사람 만나는 일이 두렵다 그리고 헤어질 때 건네는 언·제·다·시·보·자· 는 말이 나를 더없이 속물이게 한다 둔촌시장 길따라 사람들 사이로 숨고 싶다 ♬~♬
          '언제 다시 보자'는 말은 이제, 만나도 그만, 안 만나도 그만인 그와 나의 마지막 장이다. 여지껏 살아 오면서 마음에도 없는 '다시 보자'는 헛된 기약을 몇 번이나 했던가! 이제 저물어 가는 길. 만남보다 떠나 보냄이 더 많게 될 앞길에는 또 얼마나 많은 만남의 부도를 내고 살까? 2008. 08. 11. 여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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