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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이

크리스마스 추억

by 여름B 2006. 12. 25.

 

우리 동네에도 교회가 하나 있었다.

시간이 나면 항상 그 교회의 넓은 마당에서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다. 그 친구들 속엔 말집 아들이며 천도교회집 아들, 무당집 아들, 교회 종지기 아들, 쌀집 형제 등 각양각색의 친구들이 잡탕이 되어 땀투성이로 봄가을을 가리지 않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에 우르르 교회로 몰려가 떡이나 과자를 얻어 먹곤 하였다.

 

그러다가 머리가 좀 굵어진 어느 해 겨울

그 해에도 역시 크리스마스는 다가왔고 또다시 교회로 우 몰려 가 기대하던 과자를 기다리며 지루한 예배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이윽고 예배가 끝나고 드디어 과자를 받을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착실하게 교회에 다닌 아이들과 나처럼 크리스마스에만 나온 아이들을 마치 상록수에서 영신이가 분필로 금을 그어 가르듯이 완전히 분리하는 게 아닌가?

 

'진짜'와 '가짜'로 나뉘어진 아이들의 얼굴은 함께 놀던 때와는 완전히 딴판으로 변했다. '진짜'로 가려진 아이들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가짜'인 우리 쪽을 바라보는 반면 우리 '가짜'들은 부끄러움 때문에 완전히 기가 죽어 버렸다. 뛰쳐 나가고 싶었지만 워낙 아이들이 많아서 그것도 쉽지 않아 그냥 창피함을 비굴한 얼굴로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 군대에서 강제로 교회를 다니게 될 때까지 나는 교회의 마당을 딛지 않았다.

 

이제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고 있는 교회는 없겠지?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셨나요?

 

                                                                                                  2006. 12. 25.   여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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