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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에 담기

신두리 사구에서

by 여름B 2018. 2. 24.










           묵독파티 
   
                        류인서 
 
  
이곳의 약속은 
‘오직 고요할 것’
 
블라인드 틈으로 스며든 그늘이
탁자를 삼키고
꽃병뿐인 액자를 삼킨다
 
침대 위에는
읽다 펼쳐둔 책처럼
그의 벗은 엉덩이가 있다
 
모서리가 희미한 창문에다
새들이 흉강의 남은 빛을 베껴 넣는다
소리의 그늘까지가 빛의 유희인가
 
숨소리는 내가 읽은 드물게 에로틱한 페이지
간빙기의 따뜻함이 조금
세속적인 저녁기도에 녹아든다
 
우리가 모래의 책이라면
그의 엉덩이를 펄럭이는 사구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석고가루와 물을 굳혀 만드는 입체조형물처럼
그의 엉덩이는
내가 안경 없이 읽고 싶은
뜨겁고 서늘한 페이지들
 
동요하는 세계에 대한 고백처, 이곳은
우리가 방문한 언덕마을의 태연한 하루
 
사막에는 안전기지가 없다
나는 내 사랑을 동기화한다



바람이 많이 불었다.
날은 흐리고 미세먼지는 자욱했다.
흐린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미세먼지 때문인지
저만치서 바다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물이 잠시 비워 둔 자리 백리포 앞 바다에서는
성난 바람이 양떼처럼 모래알을 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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