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잠시 하구둑으로 나갔다
썰물 때가 되어 포구는 작은 어선들이
뻘밭에서 눈을 껌벅이는데
목숨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
하구둑을 부지런히 걷고 있다
그 목숨이 무엇이기에 저렇게
손을 휘저으며 빠른 걸음들을 만들까
저녁놀이 익어간다.
붉은 도미의 저녁
박유라
뜨겁게 달구어진 프라이팬 위로
지옥의 순간들이 지나가고 있다
수평선을 내달아온 검은 바람이 칼끝에 돋고
지글지글 내장까지 다 태워
붉은 구름들이 하늘 밖으로 끓어 넘치는 저녁
어스름 사이로 냄새가 먼저 지나가고
가을장마 뒤 제사가 다가올 무렵
저 향기로운 식탁 위에 가뿐히 오르기 위해
죽은 자가 건너가는 가장 확실한 징후
냄새는 집요하다
발기발기 찢기고 뜯기는
향연이 열리는 곳곳마다 폐허가 되고
기억은 해초처럼 검게 너풀거린다
몇 개의 바다와 강풍을 아슬아슬 넘어왔을
아련한 추억과 무거운 회한들 그것들을 발라내고
한 때 도미라 불리던 것들 구름이라 불리던 것들
바람 속에 그 이름이 짓이겨져 흔적이 없는
식탁 너머 저 멀리
이제는도미가아니다아버지가아니다아무것도
아니다너도아니고나도아니고아닌것도아닌
저녁의 입구에 서서
소리 없이 꽃들은 뚝뚝 목을 꺾고
붉은 목구멍이 하나 캄캄하게 닫힌다
'렌즈에 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변공원의 여섯 그루의 포풀러 (0) | 2013.09.21 |
---|---|
여름을 지켜내다 (0) | 2013.09.07 |
옥산저수지의 아침 (0) | 2013.08.25 |
부여 임천의 성흥산성 (0) | 2013.08.19 |
덕유산 향적봉의 운해 (0) | 2013.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