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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에 담기

하구둑의 저녁

by 여름B 2013. 9. 2.

 

 

 

  

 

   

  

 

 

 

 

저녁을 먹고 잠시 하구둑으로 나갔다

썰물 때가 되어 포구는 작은 어선들이

뻘밭에서 눈을 껌벅이는데

목숨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 

하구둑을 부지런히 걷고 있다

그 목숨이 무엇이기에 저렇게

손을 휘저으며 빠른 걸음들을 만들까

 

저녁놀이 익어간다.

 

 

 

 

 

 

 

 

붉은 도미의 저녁

                                              박유라

  
뜨겁게 달구어진 프라이팬 위로
지옥의 순간들이 지나가고 있다
수평선을 내달아온 검은 바람이 칼끝에 돋고
지글지글 내장까지 다 태워
붉은 구름들이 하늘 밖으로 끓어 넘치는 저녁

어스름 사이로 냄새가 먼저 지나가고
가을장마 뒤 제사가 다가올 무렵
저 향기로운 식탁 위에 가뿐히 오르기 위해
죽은 자가 건너가는 가장 확실한 징후
냄새는 집요하다

발기발기 찢기고 뜯기는
향연이 열리는 곳곳마다 폐허가 되고
기억은 해초처럼 검게 너풀거린다
몇 개의 바다와 강풍을 아슬아슬 넘어왔을
아련한 추억과 무거운 회한들 그것들을 발라내고
한 때 도미라 불리던 것들 구름이라 불리던 것들
바람 속에 그 이름이 짓이겨져 흔적이 없는
식탁 너머 저 멀리

이제는도미가아니다아버지가아니다아무것도
아니다너도아니고나도아니고아닌것도아닌

저녁의 입구에 서서
소리 없이 꽃들은 뚝뚝 목을 꺾고
붉은 목구멍이 하나 캄캄하게 닫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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