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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의 선제리 아낙네들

by 녀름비 2013. 6. 23.

 

주말이면 산전을 일군다 핑계를 대면서 지내다 오늘은 옥산저수지를 둘러 보기로 했다.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아니다, 내가 오지 못하던 사이에 많이도 변했다.

비 온 뒤의 숲속은 보아 주는 이 없어도 이렇게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었다.

 

 

                

                                                               까치수염도 보이고

                  

 

 

                            저 녀석은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저수지쪽으로 올라가는 숲길이다. 때죽나무꽃은 이미 지고 보리알만한 열매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저수지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다.

 

 

 

 

 

                             어린 갯버들이 뿌리를 많이 드러내고 있으니 물이 많이 났나 보다.                            

 

 

 

                       엉컹귀꽃 속에 민중들의 땀이 보인다.

                       고은 선생의 시 속에서 등장하는 아낙네들이 보인다.

 

 

 

 

 

선제리 아낙네들 / 고은

 

먹밤중 한밤중 새터 중뜸 개들이 시끌짝하게 짖어댄다.

이 개 짖으니 저 개도 짖어

들 건너 갈뫼 개까지 덩달아 짖어댄다.

이런 개 짖는 소리 사이로

언뜻언뜻 까 여 다 여 따위 말끝이 들린다.

밤 기러기 드높게 날며

추운 땅으로 떨어뜨리는 소리하고 남이 아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의좋은 그 소리하고 남이 아니다.

콩밭 김칫거리

아쉬울 때 마늘 한 접 이고 가서

군산 묵은 장 가서 팔고 오는 선제리 아낙네들

팔다 못해 파장떨이로 넘기고 오는 아낙네들

시오릿길 한밤중이니

십릿길 더 가야지.

빈 광주리야 가볍지만

빈 배 요기도 못 하고 오죽이나 가벼울까.

그래도 이 고생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못난 백성

못난 아낙네 끼리끼리 나누는 고생이라

얼마나 의좋은 한세상이더냐.

그들의 말소리에 익숙한지

어느새 개 짖는 소리 뜸해지고

밤은 내가 밤이다 하고 말하려는 듯 어둠이 눈을 멀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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