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을 깎으면서
국민학교 1학년 5반 때
내 뒤에 앉았던 얼굴이 검은 준식이.
쉬는 시간이면 도루코 칼로
참 예쁘게도 연필을 깎았다.
밤톨처럼 다듬어진 그 머리들이
키가 큰 순서대로 가지런히
고운 필통 속에 뉘어지면
미소 띤 하얀 이가 칼을 접어 뚜껑을 닫았다.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성당 신용협동조합에 다니던 준식이
아침 저녁으로 자전거 패달을 밟으며
연필을 깎듯이 성당의 언덕길을 오르락거렸다.
우연히 마주쳐도 서로 못 본 체했다.
오늘 아침
거칠게 깎아놓은 내 연필을 들여다 보며
하얀 웃음으로 세월 자락을
밤톨처럼 예쁘게 깎아 놓았을
준식이의 필통이 보고 싶어지는 까닭은
2007. 12. 06. 여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