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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서 그리고 자란 집은 양철지붕이었다.
우리는 읍내 한쪽에서 살았고 그 근처에 양철로 지붕을 한 집이
우리집 말고는 없었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을 가리켜
함석집이라고 불렀다.
함석 지붕 아니 양철 지붕의 집은
비가 쏟아는 밤이면 그 지붕을 두들기는 요란한 소리에 잠이 깨
다시 잠을 들 수 없는 집이었으며
여름에는 뜨겁게 달궈진 태양열을 식히려고 형제들이 수시로 지붕에 물을
끼얹곤 하던 집이었으며
녹이 슬어간다고, 작은 아버지가 구해 와 발랐던 검은 코크스가
여름이면 줄줄 녹아 내리는 집이었다.
이제 그 집은 어느 날인가 기와로 바뀌었고 고집 센 노파 한 분만이
그 아래에서 바쁜 걸음을 하신다.
가끔씩 그 집에 가면 물이 차 있는 우물이 있고 금잔디가 깔린 마당에서
그 지붕을 올려다 본다.
아직도 작은 북을 신나게 쳐대는 빗소리가 들리고
형은 바가지에 물을 퍼서 지붕으로 쏘아 올리며
열기에 녹아 내리는 코크스는 방문한 손님의 하얀 반소매 옷에
검은 똥을 떨어뜨리는 모습을 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무더운 여름날 밤 지붕을 마음껏 두들기고
훌쩍 떠나버리는 여름비의 시원한 뒷 모습을 잊지 못한다.
2007. 03. 24. 여름비
이제 내 안에는 양철 지붕은 없나
한쪽이 뜨거워지면
다른 쪽도 당연히 뜨거워져야 하는 것이거늘.....
녹이 너무 깊이 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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