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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에 담기

큰아들

by 여름B 2005. 10. 6.

문상을 다녀오느라 늦게 귀가하니 아내의 표정이 어둡다.

큰아들이 수시에서 탈락을 했는데 너무나 마음이 상해서 울었다는 것이다.

'탈락'이라는 것을 태어나 처음으로 실감나게 경험한 것이었으니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지가 보더라도 동생보다 자기가 훨씬 노력을 많이 한대.

독서실에서 똑같이 영어를 공부하고 나서 서로 물어보기를 하면 자기는 따라갈 수가 없대.

동생은 음료수 마셔가며 슬슬 공부하고

자기는 지지 않으려고 싸매고 공부해도 도저히 안 된대.

나 보여주려고 컴퓨터에 받아 놓는 동영상 같은 것들도 실상 동생이 교육방송 보면서

심심하면 받아 놓은 것들이래.

저는 그런 것 받을 틈도 없대.

엊그제 동생이 논술 써 놓은 것을 보았는데 자기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잘 써 놨더래.

그러면서 울었어.

왜 나는 동생보다 못하냐고.

자기 딴에는 동생보다 더 열심히 하는데 왜 동생을 따라갈 수 없는지 그러면서......

아마 자기 머리가 동생보다 많이 나쁜가보다고 하면서.

그리고 아빠가 수시를 탈락한 자기를 어떻게 보실지도 두렵다고 그랬어.

그러니까 당신이 있다가 언이 오면 위로좀 해줘.

뭐라고 하지 말고.

알았지?

 

아내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열두 시가 넘었다.

다녀왔습니다.

아들이 인사했다.

오냐.

 

평상시처럼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저에게 닥친 모든 것은 -그것이 아픔이든 기쁨이든- 혼자 겪어내야 하니까.

그러면서 자라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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