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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온 글

바람의 화원

by 여름B 2007. 12. 22.

    여인의 고름 사이로 얼핏 단아한 매무새가 드러났다. 여인이 자주색 저고리의 옷고름을 끌렀다. "어설픈 손재주로 가야금을 탔으니 이제 생도님의 농현을 기다립니다." 여인이 고개를 살짝 돌렸다. 윤복의 눈이 커졌다. "나더러 가야금을 타라는 것이냐?" "소리내는 악기가 어찌 가야금뿐이겠습니까? 사내의 손에 울고 우는 최고의 악기는 여인의 몸이겠지요." 눈부시게 하얀 속살에 윤복은 주춤 물러앉았다. "고름을 여미어라." 여인의 놀란 눈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지나간 날 완력으로 자신의 옷고름을 풀어내던 수많은 취한 손들을 기억한다. 때론 힘을 다해 고름을 싸잡고 버티고, 때론 억지로 잡아떼고 정신없이 방을 뛰쳐나왔다. 그런데 스스로 푸는 옷고름을 이 사내는 어찌 다시 여미라 하는가. "기방을 드나드는 천한 여인의 몸이라 꺼리시는 것입니까?" "하나의 줄이 끊어졌다고 가얏고가 음조를 잃더냐. 네 몸을 헛되이 여기지 말아라. 한 사내의 하룻밤이 아니라 수많은 자들이 영원한 찬탄을 받아야 할 몸이다." 긴 손가락이 정향의 뺨을 쓰다듬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정향입니다." "언젠가 널 다시 찾았을 때...... 그때 옷을 벗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윤복은 방문을 열고 어둠이 짙게 깔린 긴 복도를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가야금 줄 하나가 끊어졌다고 그 음조를 잃을소냐 ......

                                                                                                               

                                                                                  2007. 12. 22. 여름비

                                                                           

         

                                                "그래, 누군가를.......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그만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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