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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온 시

길 위에서

by 여름B 2005. 11. 13.

    

     

     

               위에서

     

                                             나희덕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개미를 기억해내었다
    눅눅한 벽지 위 개미의 길을
    무심코 손가락으로 문질러버린 일이 있다.
    돌아오던 개미는 지워진 길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제 길 위에 놓아주려 했지만
    그럴수록 개미는 발버둥치며 달아나버렸다.
    길을 잃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 게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과 냄새를
    흐려놓았던지, 나의 발길은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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