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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조용미

by 여름B 2005. 8. 7.
                       流    謫
                                                                 /조용미
    
      오늘밤은 그믐달이 나무 아래 귀고리처럼 낮게 걸렸습니다 은사시나무 껍질을 만지며 당신을 생각했죠 아그배나무 껍질을 쓰다듬으면서도 당신을 그렸죠 기다림도 지치면 노여움이 될까요 저물녘, 지친 마음에 꽃 다 떨구어버린 저 나무는 제 마음 다스리지 못한 벌로 껍질 더 파래집니다 멍든 푸른 수피를 두르고 시름시름 앓고 있는 벽오동은 당신이 그 아래 지날 때, 꽃 떨군 자리에 다시 제 넓은 잎시귀를 가만히 내려놓습니다 당신의 어깨를 만지며 떨어져내린 잎이 무얼 말하고 싶은지 당신이 지금와서 안다고 한들, 그리움도 지치면 서러움이 될까요 하늘이 우물 속 같이 어둡습니다
 

    사랑의 종말은 항상 멍든 가슴을 남긴다.

    한때 부지깽이처럼 빨갛게 달구어진 열정도

     

    한 순간에 송곳같은 고드름으로 변하고

    솜털 같던 달콤한 말들이

     

    파편이 되어 가슴을 뚫어 놓는다.

    유배지가 어디 따로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