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용천사에 갔습니다.
역시나 대부분의 꽃무릇은 다 지고 활짝 핀 몇 그루와
이제 피어나는 늦둥이가 애처로운 눈으로 나를 반겼습니다.
절마당에선 노래자랑이 벌어져 흥겨움이 골짜기를 채우고 있었는데
동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무척이나 흥겨웠습니다.
꽃무릇 군락지로 가는 산길에 사람 키보다 약간 큰 바위벽이 있었습니다.
그 벽에 철모과 반합 따까리 그리고 모형 소총을 붙여 놓았더군요.
6.25 때 벌어졌던 동족 상잔의 슬픈 이야기를 그곳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빨치산을 소탕한다고 이곳에 함포사격을 가해 용천사가 소실되고
많은 주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포연 속에 하늘로 날아 올랐는데
그 슬픈 영혼들이 꽃무릇으로 피어났다고 일부 주민들은 말합니다.
있어서는 아니 되었던 우리 민족의 아픔을 붉은 꽃무릇에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조금이나마 그 아픔을 달래려고 했던 게 아니었을까요?
지는 꽃들이 애처로워보였습니다.
지는 꽃
지는 꽃도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내가 검은 교복에 중학생 모자를 썼을 때
내 동창 옥자는 입술을 빨갛게 물들이고
검은 얼굴에 분가루를 뒤집어 썼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은
나는 재미 삼아 술집 골목을 지나다녔지만
옥자는 황산 미군들에게
웃음을 팔러 술집 골목에서 살았다.
옥자와 내가 골목에서 딱 마주친 날
얼굴이 검은 미군의 팔에
인형처럼 옥자가 달려 있었다.
옥자는 나를 보고 웃었지만
나는 미군을 보고 웃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그 골목에서 재미를 찾지 않았다.
옥자도 찾지 않았다.
지금,옥자는 어느 곳에서 꽃처럼 지고 있을까.
눈물같은 씨 하나 남기는
지는 꽃은 아름다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