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에 담기

시월을 보내며

녀름비 2005. 11. 1. 06:17

        그대 
        시월의 억새 저리 지쳐갑니다.
        늦둥이같은 꽃무릇 몇 송이가
        갓길에 처량하던 날 
        저녁 햇살을 맞은 억새가 백발처럼 
        빛을 내고 있던 길가의 주막에서 
        텁텁한 잔에 도토리 묵도
        어울리는 못하는 날이었습니다. 
        시월의 마지막 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잠들지 못하는 긴 동면에 빠졌습니다.
        그 기나긴 내 겨울
        그대의 마지막 치맛자락에서 시작된
        차디찬 계절을 홀로 견뎌야 했습니다.
        끊임없이 불어오는 찬 바람을 
        온 몸으로 견뎌내야 했으며
        홀로이 눈을 감고 
        셀 수 없는 날을 지새야 했습니다.  
        기억하나요,
        그대 기쁨이었지만 
        내겐 슬픔이었던 그날을
        억새 
        머리 흩날리며 언덕을 내려오던 
        그 짧았던 가을날을 
        또 다시 계절은 찾아왔다가 
        소리없이 지고 있습니다.
        그날의 억새, 
        저리 가을비에 젖어 처량히 사위어 가는데.
                  2005./11/01   여름비